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각국의 통화정책 방향성이 서로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별로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초래한 요인이 각각 다르다는 게 그 이유다. 올해 국내 통화정책 방향성에 대해선 여전히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경기와 금융안정 흐름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는 18일 서울 중구 소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통화정책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 총재는 우선 한국의 작년 통화정책 여건이 주요국과 3가지 공통점을 띤다고 봤다.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인플레이션, 달러화 강세, 높은 레버리지(고정지출 및 비용을 통한 수익 창출)에 기인한 통화 긴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물가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수요가 빠르게 회복됐다. 이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으며 원자재가격이 높아졌다. 모두 인플레이션 상승을 초래하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로 지역의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8%까지 뛰기도 했다. 한국 역시 5.1%로 외환위기(1998년 7.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빠르게 올리며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졌다. 이 총재는 “국내의 경우, 유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 환율까지 급등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됐다”며 “과거에는 달러와 유가 흐름이 서로 반대로 움직였지만, 작년에는 한 방향으로 움직여 어려움도 더 커졌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전 세계적으로 레버리지 수준이 크게 높아졌고, 여기에 통화 긴축이 맞물려 금융안정 취약성이 커졌다고 봤다.
이 가운데 한국만의 차별적 상황에 대해서도 3가지로 압축해 설명했다.
우선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과정에 유로는 에너지 가격 급등, 미국은 재정지출 및 노동시장 변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한국은 모두 양 지역의 ‘중간 수준’에 해당했다고 진단했다. 외환시장에서의 원화 가치 역시 작년 8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달러화 강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됐다고 봤다. 레버리지와 관련해선 높은 가계부채를 특이점으로 봤다. 이 총재는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5%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저금리 환경 및 코로나 유행 당시 빠르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통화정책 방향은 주요국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올해는 국가별로 통화정책이 차별화되는 가운데, 통화정책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한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은 작년 국제유가가 급등한 영향이 CPI(미국 소비자물가지수)에 뒤늦게 반영되면 주요국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도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되, 경기 및 금융안정 흐름도 면밀히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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