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작명에 대한 특별한 공식은 없다. 1990년대만 해도 ‘압구정 현대아파트’처럼 ‘지역명+건설사’가 일반적이었다면 근래에는 20글자가 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12월 시민 100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는 “아파트 이름이 어렵고 비슷해 집을 찾는 데 헷갈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2.3%는 “외국어 이름이 어렵다”고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건설사들이 삼성(래미안), DL이앤씨(e편한세상), GS(자이) 등 아파트 상표를 만들면서 아파트 단지 이름에도 브랜드가 붙기 시작했다. 대우건설 ‘써밋’, 금호건설 ‘퍼스트’, DL이앤씨 ‘아크로’ 등의 건설사 하위 브랜드까지 등장해 단지 이름이 더 길어졌다.
아파트 단지별로 입지, 자연 경관, 조경 등 수요자들의 선호도를 높일 수 있는 특장점을 담은 펫네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단지명이 복잡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포레스트’, ‘퍼스티지’, ‘센트럴’, ‘파크’, ‘프레스티지’, ‘원베일리’, ‘루센티움’ 등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숲세권’이 뜨자 ‘포레’, ‘파크뷰’가 아파트명에 들어가는 식이다. 과거에는 ‘한강뷰’를 선호하는 입주자들의 성향을 반영해 ‘리버’, ‘리버뷰’가 반영된 아파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여러 건설사들이 공동으로 시공에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의 아파트 공급도 단지명이 길어지는 요소다. 참여 건설사들의 브랜드를 전부 포함시키면 단지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신도시 또는 뉴타운에 위치한 아파트의 경우 지역명도 포함된다.
가장 최근에는 ‘숫자’가 아파트명에 들어가는 것이다. 세계적 부호들이 거주하는 맨해튼 미드타운에는 번지수를 넣은 타워들을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강남 초고가 아파트로 불리는 강남구 청담동 소재 ‘PH129’도 ‘129번지 펜트하우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남동 ‘나인원한남’ 역시 ‘한남대로 91’이라는 도로명 주소를 활용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반대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LH 공공분양주택의 경우에는 입주예정자들이 아파트명에서 ‘LH’를 지워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서다. LH는 이미지 쇄신과 고급화를 외치며 브랜드명을 ‘안단테(ANDANTE)’로 바꿨는데, 이 또한 입주민들의 반발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아파트 이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집값 영향이 크다. 지난해 한국부동산분석학회가 발행한 '명칭 변경 사례를 통해 살펴본 아파트 브랜드 프리미엄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아파트 명칭을 인지도가 더 높은 브랜드로 변경한 경우 명칭을 변경하지 않은 주변 아파트보다 약 7.8%의 가격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06년 이후 서울의 아파트 명칭 변경 사례 가운데 브랜드와 지역명과 관련된 명칭 변경 사례를 주로 분석했다. 다만 이러한 상승효과가 지역 주택 시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해당 아파트에만 국한됐다.
리얼캐스트가 부동산114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국에서 분양된 아파트 단지명의 평균 글자 수는 9.84자였다. 1990년대 평균 글자 수가 4.2자, 2000년대 6.1자로 계속해서 단지명이 길어지는 추세다.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 1·2차’는 전국에서 가장 이름이 긴 아파트로도 유명하다. 총 25자로 단지 구분을 빼도 23자에 달한다.
이밖에도 ‘동탄시범다은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유보라’, ‘울산블루마시티서희스타힐스블루원아파트’ 등 전국에 긴 아파트명을 가진 단지를 찾아보는 것이 이제는 어렵지 않게 됐다.
이에 서울시는 법적으로 민간 아파트 이름을 규제할 근거는 없지만, 작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권고하기로 한 상태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쉬운 우리말 이름을 지을 경우 표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가 몇 개 정도 후보군의 이름을 정해 입주 예정자들이나 조합원들에게 공지 후 선택을 받고 있다”면서 “복잡하고 길어지는 아파트 이름도 문제지만, 이를 정부가 규제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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