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출산휴가를 청구하면 사업장 내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거절을 당하거나 지체되는 등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주 허락과 상관없이 배우자 출산휴가를 자동으로 부여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男 근로자도 출산휴가 10일···제도 미숙지·부정적 인식이 '걸림돌'
26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배우자 출산휴가 사용권 확대를 위한 입법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근로자가 배우자 출산휴가를 내는 과정에서 사업장 내 부정적 인식이 휴가 사용에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에 보고된 사례에 따르면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출산을 직접 하는 것도 아닌데 10일이나 필요하냐”는 빈정거림을 듣기 일쑤였다. 사측에서 휴가 일수를 줄이거나 거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불과 2주 전 15인 규모 중소기업에 근무 중인 한 남성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청구했으나 사측이 거부했다가 3일 만 주겠다고 했다며 센터를 찾았다. 센터가 사측에 남녀고용평등법 조항과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안내한 공문을 보내자 휴가를 청구한 지 일주일 만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전유경 노무사는 "2019년에 배우자 출산휴가가 3일에서 10일로 확대됐으나 아직 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업장이 많다"고 설명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8조는 근로자가 배우자 출산을 이유로 휴가를 청구하면 10일간 유급휴가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10일보다 적게 휴가를 주면 위법이다. 그러나 사업장에서 계속 근로를 해야 하는 근로자 처지에서 사측과 다툼을 벌이기 어렵기 때문에 사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은 정부 조사로도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2020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혀 활용할 수 없다’고 답한 기업은 30%, ‘직장 분위기, 대체인력 확보 어려움 등으로 충분히 사용하지 못함’은 24.2%였다.
김미정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 법률지원팀장은 “근로자들이 사내 분위기가 악화되는 걸 우려해 소송으로 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허민숙 입법 조사관은 “위법이라도 페널티가 과태료 부과 수준”이라며 “지원 센터 안내가 닿지 않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는 사용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英·佛은 근로자 사전고지로 휴가 개시
관련 기관 도움을 통해 뒤늦게 휴가를 받더라도 정작 필요한 기간을 놓치는 근로자가 많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출산 직후 돌봄이 필요한 산모에게 남편 외에 다른 가족이 없어 청구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 휴가 청구 후 승인까지 3주가 지체된 사례도 있었다.보고서는 배우자 출산휴가를 보장하기 위해선 ‘청구’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규정을 ‘고지’로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측 승인과 상관없이 배우자 출산휴가가 자동으로 개시하도록 해 근로자에게 사용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영국·프랑스에서는 근로자가 사전 고지하는 것만으로 배우자 출산휴가를 개시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허 조사관은 “출산휴가는 당사자가 지정한 시기에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청구는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외국처럼 고지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면 근로자 사용권을 더 강력하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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