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보험사들의 채권 만기 및 콜옵션(조기상환권) 상환 규모가 5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규모가 지난해 조기·만기상환 규모 대비 2배를 웃도는 수준이어서 보험업권의 유동성 우려가 지속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이 보험업권에 채권 매입과 같은 기관투자자로의 역할을 당부하고 있어 해당 업권의 시름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2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보험권의 자본성증권 조기·만기상환 규모는 4조8979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추정치(2조1191억원)보다 2배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의 각각 한 해 순익과도 맞먹는 규모다.
개별사를 보면 △한화생명 1조2316억원 △신한라이프 6300억원 △동양생명 1000억원 △미래에셋생명 2000억원 △흥국생명 2000억원 △DB생명 1410억원 △KDB생명 5200억원 △DGB생명 500억원 △푸본현대생명 2900억원 △하나생명 500억원 △현대해상 5000억원 △메리츠화재 1000억원 △NH농협손해보험 1000억원 △한화손해보험 6680억원 △흥국화재 500억원 △롯데손해보험 600억원 등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올해에도 지난해와 같은 '제2의 흥국생명'발 유동성 위기가 불어닥칠까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당시 흥국생명이 5억 달러(발행시 환율 기준 원화 5571억원) 규모의 콜옵션을 번복하기는 했으나 이미 국내외 자금시장에서 국내 보험권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험권이 보유한 채권을 여전히 시장에 쏟아내면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는 점도 유동성 위기가 여전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지난 1월 3조4918억원 어치의 채권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4개월여 만에 보험업계가 1조원가량 채권을 사들이며 순매수로 돌아섰으나, 새해 다시 매도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가운데 보험업권 일각에서는 유동성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 속 채권 매입 등 당국의 시장 안정화 요구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주 열린 '보험사 CEO 간담회'에 참석해 "보험업계는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장기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며 치켜세운 뒤 "올해에도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따른 정상기업의 부실화가 금융산업 내에서 촉발되지 않도록 회사별로 채권 매입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뒤이어 지난 31일에는 관계기관인 보험연구원이 장기대체투자 등 보험업권의 장기투자자 역할 강화를 위한 연구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이 원장 발언에 힘을 싣기도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흥국생명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콜옵션을 미루는 보험사는 추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기·만기 상환액이 늘어나면서 보험권의 자본조달 부담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관치라고 단언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당국이 하필 이러한 시기에 '공적 역할' 강화를 촉구하는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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