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서 전셋집을 알아보던 직장인 A씨는 2년 전 한 공인중개업소로부터 빌트인 가전을 모두 갖춘 방 2개 구조의 깨끗한 신축 빌라를 소개받고 전세계약을 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이 빌라를 소개한 공인중개업소는 역세권 인근의 새집이라는 점과 전세대출은 물론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보증금을 100% 반환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전세금이 주변 시세보다 약간 높았지만 첫 입주축하금과 이사지원금으로 2000만원을 준다는 말에 A씨는 덜컥 계약을 했다.
A씨는 계약 후 집주인이 세금체납으로 보증보험가입조차 안되는 악성 임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는 A씨는 신혼부부특공으로 당첨된 아파트 청약을 포기하고 전셋집을 경매에서 낙찰받았다. A씨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껴야 할 집이 울분과 저주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면서 "전세사기 빌라라는 소문이 돌면서 매매도 어려워져 이제 이사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A씨와 같은 전세사기가 원천 차단된다. 2일 공개된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에는 임차인이 계약을 체결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위법성을 제거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겼다. 시세가 없는 집의 가격을 임대인과 감정평가사가 부풀리는 행위를 봉쇄하고,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허용구간을 낮춰 무자본 갭투자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과거 임대차 3법으로 전세대란이 일어나자 서민들을 위한 명목으로 전세보증금 보험제도를 강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직적인 사기집단에게 먹잇감을 제공하고, 다수의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하게 돼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2019~2022년 초반까지 전세사기 피해 물량이 집중돼 올해부터 내년까지 피해자가 정점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세보증범위 낮추고 임대인, 중개인 정보 공개 강화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증보험사고액은 약 1조2000억원 규모로 2021년과 비교해 2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세사기 검거건수도 187건에서 618건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의 사기 가담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값 급등기에 전세가율이 높은 고위험 계약이 증가했고, 고가에 거래된 전세계약 만기 시점이 다가오면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특히 시세의 100%까지 가입 가능한 반환보증을 악용한 깡통전세 계약이 중개사, 분양대행사 등과 공모해 체결된 정황이 다수 파악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매매가의 100% 전세까지 보증금을 반환해주는 보증제도의 허점이 사기에 이용된 만큼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세가율을 90%로 낮추면 최소한 10%는 자기자본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무자본 갭투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감정평가사의 신축 빌라 평가액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앞으로는 실거래가가 없는 경우 공시지가를 도입하고, 협회가 추천하는 기관이 인증하는 가격에만 거래에 활용할 수 있다. 전세사기 가담 경력이 있는 법인이나 감정평가사 명단도 공개된다.
또 보증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만 임대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된다. 이미 임차인이 거주 중인 집은 '선보증 후등록'으로 전환한다. 만약 공실이라 보증가입이 어렵다면, 임대사업 등록 이후 보증가입을 허용하되 보증 미가입 시에는 임차인에게 자동 통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만약 보증에 가입되지 않았다면 임차인은 계약해지와 위약금을 받을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개선된다. 임차인이 우선변제권을 확보하기 전에 임대인이 선순위 근저당을 설정하지 못하도록 중개사 계약서에 특약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한다. 임대인이 주택을 제3자에게 매매할 경우 신규 임대인이 보증가입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임차인에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앞으로는 중개사가 임대인 신용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이력을 공개해야 한다. 중개사가 임대인의 납세증명서,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여부, 전세가율 등을 확인하고 임차인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임차인도 중개사의 영업이력과 소속 중개보조원 등의 정보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처벌 강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집을 경매로 낙찰받아 떠안은 경우에는 피해자를 무주택자로 간주해 청약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에 따라 경매로 낙찰받은 집을 보유한 기간은 유주택 기간에서 빠진다.
가령 무주택자 5년에 낙찰주택을 3년 보유한 뒤 청약에 당첨된 B씨의 경우 기존에는 무주택 기간이 2년만 인정됐지만 앞으로는 무주택 기간이 10년으로 산정된다. 다만 무주택 인정을 받으려면 경매 낙찰 주택이 공시가격 3억원(지방 1억5000만원) 이하, 전용면적은 85㎡ 이하여야 한다.
전세사기 연루 공인중개사 처벌도 강화된다. 현재 공인중개사는 직무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만 자격이 취소되지만 앞으로는 집행유예를 받아도 취소되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한다. 감정평가사는 지금은 집행유예를 포함한 금고형을 2회 받아야 자격이 취소되지만, 법을 고쳐 금고형을 1회만 받아도 자격이 취소되도록 한다.
전세사기 단속 기간도 늘린다. 국토부는 단기간 주택을 대량으로 매집하거나 임대차 확정일자 당일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의심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오는 5월까지 기획조사에 나선다. 분양대행사의 불법 온라인 광고와 전세사기 의심 매물에 대해선 6월까지 집중 신고 기간을 둔다. 경찰청·국토부의 전세사기 특별단속 기간은 7월까지 6개월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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