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구형 아이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서 성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소비자들이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업데이트로 성능이 일부 제한되더라도 전원이 예기치 않게 꺼지는 현상을 개선하는 게 더 유용하다고 판시했다.
법원 판결에 소비자 측은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전 증거개시 제도)의 부재로 소비자 피해 구제에 한계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김지숙 부장판사)는 2일 소비자 9800여명이 애플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송 비용도 모두 소비자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성능조절 기능이 포함된 아이폰 업데이트로 부정적 효과보다 긍정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아이폰 업데이트는 예기치 않은 아이폰의 전원 꺼짐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으로, 일부 성능이 제한되는 것보다 더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구매한 궁극적 목적이 고성능을 누리기 위함이었는데 이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주장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능조절 기능이 없다면 고성능 애플리케이션을 어짜피 구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소비자들은 애플이 업데이트와 관련한 고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궁극적으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업데이트로 인해 아이폰이 훼손되는 등 소비자가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소비자 측은 디스커버리 제도의 부재로 재판에서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미국에서 운용하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재판 시작 전 증거를 모두 개시하는 절차를 뜻한다. 증거가 기업에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소비자 측 법무법인 한누리는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의 부재 등으로 집단적 소비자 피해 구제에 큰 한계가 있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며 "항소 여부 등 후속 대책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는 2017년 12월 일부 소비자가 아이폰 운영체제(iOS) 업데이트를 한 뒤 성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고 주장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했다. 나아가 성능이 떨어지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신형 아이폰으로 교체할 것을 노리고 애플이 매출 증대를 위해 고의로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소비자들은 2018년 3월 "문제의 업데이트를 설치해 아이폰 성능이 저하되는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며 애플이 원고 1인당 20만원씩, 총 12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 측은 "애플이 문제가 된 iOS 업데이트를 통해 아이폰의 성능저하가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배터리 결함 은폐, 고객 이탈 방지, 후속 모델 판매촉진 등을 위해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이러한 사정을 숨긴 채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애플은 공식 성명문을 내고 이용자에게 고지없이 아이폰 성능을 낮췄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구형 아이폰의 배터리 노후화로 인해 전원이 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성능을 저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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