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전기·난방 요금은 물론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실질 임금은 되레 감소하면서 민생고가 극심해지는 모습이다.
물가 급등하는데 소득은 뒷걸음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세가 이어졌다. 2021년 말 배럴당 80달러대였던 국제 유가는 전쟁 직후 1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3월에는 13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급감하면서 국제 가스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우리나라 천연가스 수입액은 2021년 255억 달러에서 지난해 500억 달러로 2배 가까이 폭등했다. 같은 기간 수입량은 별 차이가 없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국내 공공요금 인상을 부추겼다. 국제 시세를 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한 결과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한전은 지난해 30조원 적자를 기록했는데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가스공사 적자 규모도 10조원에 육박했다.
궁지에 몰린 한전과 가스공사는 요금 줄인상에 나섰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세 차례(4·7·10월)에 걸쳐 킬로와트시(㎾h)당 19.3원 오른 데 이어 올 1월부터 추가로 13.1원 인상됐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네 차례(4·5·7·10월) 올랐고 올해 추가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일반 물가도 고공 행진 중이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2020년=100)로 전년 동월보다 5.2% 올랐다. 지난해 12월 상승률(5.0%)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물가 상승률이 전월 대비 확대된 건 지난해 10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가공식품과 외식 등 서민 먹거리 가격이 크게 올랐다. 가공식품은 10.3% 오르며 2009년 4월(11.1%)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특히 빵(14.8%)과 스낵 과자(14.0%), 커피(17.5%) 등 상승 폭이 컸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여파로 외식 물가도 오름세를 보였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7.7%로 전월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물가는 뛰는데 실질임금은 되레 뒷걸음질 치면서 서민들 부담은 더욱 커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2022년 1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면 물가를 반영한 지난해 11월 실질 임금은 328만6000원으로 1년 전보다 1만6000원(0.5%) 감소했다.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악화했다는 의미다.
종전 기미 없는데···정부는 여전히 '낙관론'
향후 전망도 어둡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이 됐지만 좀처럼 종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에너지 공기업 적자를 메우기 위해 요금을 올리고 있는데 전쟁 장기화로 유가와 가스 가격이 추가 상승하면 요금 인상 폭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필수 생계비로 꼽히는 전기·가스요금뿐 아니라 대중교통 요금 인상까지 예고돼 있다. 이달부터 서울 지역 택시요금이 올랐고,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 가능성도 고조되는 분위기다.
통상 1년에 한 번 올린다는 식품업계 역시 불문율을 깨고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생수·과자·빵·음료 등 서민 먹거리에 대한 가격 인상 러시에 민생고가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낙관론을 펼친다. 올 하반기에는 물가가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새해 첫 달 물가가 5% 넘게 오른 것과 관련해 "1월 물가는 전기요금 인상, 연초 제품 가격 조정 등으로 전월보다 소폭 상승했으나 당초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전체 물가 흐름을 보면 1분기에는 5% 내외로 높은 수준을 보이다가 2분기를 지나면서 상방 압력이 다소 약해지고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안정되는 '상고하저'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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