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계약에서 정한 임대주택 분양 전환 가격이 강행 규정이 정한 기준을 초과했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를 했더라도 입주민들이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부제소 합의 탓에 정작 '계약이 강행 규정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면 강행 규정 입법 취지를 몰각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해당 합의는 무효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 등 아파트 주민 132명이 B건설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B사는 1999년 2월 전북 완주에 209가구 규모의 공공임대주택을 지었다. 이후 2013년 11월 아파트 각 가구 중 계약 면적 64㎡ 가구는 4307만원, 77.76㎡ 가구는 5289만원으로 분양 전환 가격을 정해 완주군에서 승인을 받았다.
B사는 분양가격 협의를 거쳐 A씨 등 입주민들과 가구당 50만원 싼 분양가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분양가격에 대해 일절 민형사상 청구와 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부제소 합의)를 했다.
이후 A씨 등 입주민들은 대금을 납입하고 분양을 받았는데 분양 전환 가격이 구 임대주택법 등에서 정한 산정 기준 금액보다 1000만원 이상 비싸게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A씨 등은 B사를 상대로 "100만원씩이라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본안 심리 없이 사건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A씨 등이 B사와 부제소 합의를 했기 때문에 A씨 등에게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고 이로 인해 소송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구 임대주택법 등에서 정한 산정 기준 금액 규정은 강행 규정이기 때문에 우선 분양계약이 강행 규정 위반으로 인한 무효인지를 먼저 들여다보고 부제소 합의 무효 여부를 심리·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강행 규정이란 당사자 의사에 관계 없이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을 말한다. 주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와 관계있는 규정으로 공공의 질서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계약 등 법률행위는 공공질서에 반해 무효가 된다.
대법원은 "분양전환가격이 강행 법규인 구 임대주택법이 정한 산정 기준을 초과했다면 해당 분양계약은 초과하는 범위 내에서 무효"라며 "계약에 부수적으로 붙는 부제소 합의로 인해 '계약이 강행 법규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면 강행 법규의 입법 취지를 몰각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므로 그 부제소 합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무효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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