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의 쌍두마차라고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행보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만 하더라도 큰 틀에서 양측이 삐걱거리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협력의 끈을 유지했다. 그러나 3년이나 끌은 코로나와 1년을 넘어선 우크라이나 사태에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분열하는 디커플링이 급물살을 탄다. 미·중 갈등의 격화로 글로벌 공급망에 이어 시장까지 쪼개지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주변국들의 줄서기를 강요한다. 어디에 자국의 이익이 있는지, 어느 편에 서야 반사적인 틈새 이익을 챙길 수 있을까 하고 약삭빠르게 움직인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여 모두가 자기 살길 찾기에 분주하다. 최소한 경제에 관해서 남에 대해 배려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나라가 지구촌에 없다.
최강 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축통화국이면서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자국에 닥친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전후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플레를 잡는답시고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킹달러를 유도한다. 이로 인해 경제 체질이 약한 대부분 나라가 일시적인 자본 유출을 우려해 금리 인상 도미노 러시에 합류했다. 물론 인플레가 미국에만 국한된 현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각국이 이에 동조했다. 한편으론 자국산 구매 확대를 위한 ‘바이 아메리칸’이나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를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은 전형적인 미국판 보호무역이다. 시행 초기부터 상당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자국의 이익에 집착하려는 정치 포퓰리즘의 형태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이런 일방적인 행위나 조치에 대한 거부감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일정 수준 금리를 올려야지만 경제가 버텨주지 못하면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미국 따라가려다가 자국 경제의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분출한다. 이에 따라 아시아를 비롯하여 선진국이나 신흥국 구분 없이 상당수 국가가 ‘노 타이트닝(긴축 자제)’, 즉 기준 금리를 동결하는 쪽으로 경제 운용의 무게 추를 옮겨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 이에 함께 탔다. 계속된 긴축에도 경기침체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경제와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리 커플링에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위드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팬데믹(감염병)이‘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해 가고 있음이 감지된다. 명목상 미국의 최대 시장이긴 하지만 구매력으론 중국이 더 큰 시장이고, 실제로 중국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긍정적임은 익숙해져 있는 경험이기도 하다. 중국 경제 리오프닝 효과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지만 이미 물살을 타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 글로벌 경제 주체들은 중국을 주목한다. 집안 단속에 급급한 미국보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에 꽂히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코로나 이전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촉각이 모인다.
경쟁국 중국과 일본은 계속 금리 동결 혹은 완화, 우리 기업 경쟁력 계속 약화 중
이웃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은 계속 금리를 동결하거나 오히려 돈을 계속 푼다. 미국 연준과 다르게 중국은 기준 금리를 6개월째 동결 중이다. 시중에서는 금리 인하 요구가 빗발치지만 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일본은 장기간 디플레로 인해 인플레에 대한 부담이 있더라도 저금리 기조를 지속한다. 1월 소비자물가가 41년 만에 최대 상승(4.2%)하는 물가 쇼크가 있기는 하지만 금융 완화 정책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다. 두 나라 모두 미국과 여건이 다르고 더 이상의 경기 하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복선을 깔고 있다. 우리 처지와도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나친 금융 경색이 중국 혹은 일본 기업과 국내외 시장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 족쇄가 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갈수록 세계 각국이 경제 운용의 방향을 긴축보다는 회복을 위한 ‘피봇(Pivot, 긴축 완화로의 정책 전환)’이 대세가 될 그것으로 보인다.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늦추지는 않겠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최근 미국의 경우 고용지표 호황과 물가 내림세가 주춤하면서 긴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매파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다음 달 또 한 번의 빅스텝(0.5% 기준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설까지 나온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금융 시장이 일시적으로 다시 휘청거릴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국가가 미국의 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같은 스텝을 밟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회복 타이밍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할 공산이 높다.
향후 경기 전망이 아직도 안갯속이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하지만 올해 경제가 ‘상저하고’가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점점 더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 내부를 보면 여전히 단기적으로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정책 당국의 손발이 잘 맞지 않아 헛발질하거나 따로 노는 경향이 짙다. 수출은 최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고,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고삐 풀린 물가 인상 도미노로 서민 경제의 주름살은 더 깊이 팬다. 중국 경제가 좋아진다지만 과거와 달리 우리에게 수혜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다. 경제 주체들의 위험수위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은 물가안정보다 경기 부양으로 축을 이동해야 한다. 유능한 정부라면 주저하지 말고 과감해야 한다. 여기서 실기(失期)하면 멀지 않아 크게 후회할 날이 온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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