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사업 추진위원회가 시공사로 선정해주는 대가로 건설사로부터 돈을 빌렸다면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더라도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시공 계약이 무효가 됐다고 해서 채무 관계까지 자동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현대건설이 A 재개발 사업 추진위원회를 상대로 낸 대여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추진위는 2006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공사 도급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는 현대건설이 사업 시행에 드는 자금을 대여해준다는 조건이 붙었고, 이에 따라 현대건설은 A 추진위에 총 34억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재개발 구역 내 일부 토지 소유자가 "조합 설립 전 시공사 선정은 무효"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법원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시공사 선정이 무산되자 현대건설은 A 추진위를 상대로 대여금 중 약 25억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대여금 계약이 유효하다면서 현대건설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법률 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일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는 민법 제137조를 근거로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대여금 계약이 무효라고 봤다.
대법원은 2심이 민법 제137조 일부 무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률 행위 당시 일부가 무효더라도 나머지 부분을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등을 심리해 나머지 부분이 무효인지 유효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심은 재개발 추진위가 공사 도급 계약이 무효가 되더라도 금전 대여 약정을 체결·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등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고 금전 대여 약정까지 무효가 된다고 판단했다"며 "현대건설이 시공사 선정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었던 2010년 7월에도 A 추진위에게 돈을 빌려줬고 일부 대여금에 대해 공증을 받은 것을 봤을 때 현대건설은 공사도급 가계약이 무효가 되더라도 대여금 계약을 유지할 의사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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