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불안한 출발의 모습을 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5분간의 짧고 대담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이 연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취할 새로운 자세를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고귀하고 듣기 좋은 표현은 한국 국민들에게 전혀 새롭지 않다. 또 윤 대통령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한 예를 들자면 지난해 윤 대통령은 왜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비슷한 표현을 썼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은 이미 오래전인 1965년 수교를 맺은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급진적인 발언이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일본과의 화해와 같이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지만 오랫동안 스스로를 진보적이며 변화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어느 진보 신문의 헤드라인은 "일본에 대한 백기투항이 강제동원 피해자 30년 투쟁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깊어진 감정의 골을 감안해보면, 윤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향후 다른 정부에 의해 다시 되돌려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 아직도 반일 감정이 깊은 이유는 한국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이 1세기 전의 항일 운동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행보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그가 이러한 정체성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국민들의 감정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1919년의 항일 봉기는 현대 한국에게 국가 정체성의 출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항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3·1 운동은 전국 규모의 비폭력 시위로 이어졌고, 이는 매우 폭력적으로 진압되었다. 왕실과 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영원히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정치적으로 봉기는 실패했지만 정신적으로 새로운 국가가 잉태됐다.
한국의 이러한 민족주의적 정체성의 요인으로 반일 감정뿐 아니라 한국이 일본의 피해자라는 인식도 항상 같이했다. 일본은 많이 변했다. 일본은 한국에게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을 했고 거의 60년 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의 하나로 도약했다. 아무도 현대의 한국을 피해자라고 보고 있지 않다.한국인의 정체성은 한반도가 분단이 되면서 복잡해졌다. 1919년 항일 봉기의 정치적 실패는 독립 운동을 두 개 진영으로 분리시켰고 이후 남한과 북한이라는 분리된 국가를 탄생 시켰다.
남북한의 분단 그 자체도 한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희생자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한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미국에 크게 의존했으며, 1989년 소련의 공산주의가 붕괴될 때까지 북한의 동맹국들과 수교를 맺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늘 피해자 자세로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외교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국민들의 반미, 반일 시위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반대로 중국에는 조심스럽고 잘 보이려는 자세를 취했다. 왜냐하면 미국과 일본은 한국에게 보복을 하지 않지만 중국은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외교 규범을 위반하며 한국 정부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까지 배치하고 있다.
과거 한국 정부는 그들의 의지와 달리 외국 제품에 대해 국내 시장을 개방하거나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국제적인 군사 행위에 참여할 때, 국익을 위해 선택한 행동이 아닌 그들이 강대국에 괴롭힘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대개 그 괴롭힘은 미국에 의한 것으로, 한국이 약소국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다른 국가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만 의거한 것이 아닌 실제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 한국은 현대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같이하는 다른 국가들과 자연스럽게 힘을 합치려는 국가이다.이러한 선택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리더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한국의 변화는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심게 될 것이다.
[번역=임윤서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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