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교토를 방문한 이후 약 11년 3개월 만에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을 일본이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이 실현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나 만찬에서는 기대했던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은 표명되지 않았다. 그간 쌓인 양국 정부 간 불신과 국민의 감정적 앙금이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해소되길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의 셔틀 외교를 재개하고 중단된 안보 대화와 차관급의 전략대화를 조기에 재개하기로 한 것은 ‘한일관계의 정상화’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대법원판결에 반발한 일본이 취했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WTO 제소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의 종료 통보 및 종료의 효력 정지 등도 원상회복될 듯하다. 양국 경제계 대표들도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설립해 양국 정부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 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서명한 공동선언에서 일본 측은 식민지 지배로 인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외교문서를 통해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화답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국회 연설에서 “일본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관계의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균형 있는 역사관이야말로 김 대통령이 양국 국민에 던진 메시지의 진수(眞髓)라 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의 방일 직전 윤덕민 주일대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글로벌 과제에 대해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면서 양국 정상은 한일관계를 1998년 한일공동선언 ‘버전 2.0’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朝日新聞, 3월 12일). 정상회담 후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의미 부여를 했는데, 이것은 윤덕민 대사의 발언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문제의식이나 한일관계의 방향 설정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지난 25년 동안 대외적 환경은 물론 양국 국내정치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정상회담 다음 날 여당 원내대표는 ‘국민과 미래를 위한 결단’을 통해 “복합 위기에 놓은 경제에 새 기회와 활력을 줄” 것이라고 정상회담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야당 대표는 정상회담을 “조공을 바치고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 같다면서 “일본의 하수인이 되겠다고 선택”한 “우리 외교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참담한 순간”이라고 폄훼했다. 아무리 정치가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해도 피해자와 유족, 60% 이상의 국민이 제3자 변제 방안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한 발언과 불과 1년 전까지 5년간 정권을 담당했던 정당 대표의 무책임한 발언에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2015년 8월 14일 발표된 아베 담화는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어선 상황에서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후대에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일본은 과거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으며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83년 1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2019년 11월 101세로 사망)는 월간 <문예춘추> 기고문(2015년 9월호)에서 과거의 전쟁을 잘못된 전쟁,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역사에 대한 반성과 민족의 자긍심은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역사의 해석과 역사의 흐름은 국제적으로 통용하는 판단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대국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나카소네는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했을 정도로 정치적 성향은 보수적이었지만, “자기 역사의 부정적인 부분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하는 용기와 겸허함을 가져야 하며, 거기서 얻은 교훈을 마음에 새겨 국민,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현대 정치가의 커다란 책무”라고도 말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전후 세대로 정치가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부정적인 역사를 직시하기보다 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는 정치가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 전 총리는 재임 중 6번의 국정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는데, 자민당에는 아베에 발탁되어 의원이 되거나 공천을 받아 선수(選數)를 늘린 의원들이 많다. 아베는 2018년 10월 국회 연설에서 자신이 선두에 서서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결의도 밝혔는데, 아베의 역사 인식에 공명(共鳴)하는 의원들도 많다.
지난해 12월 일본은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안보 관련 정책 문서를 개정했다. 그러나 9년 전인 2013년 12월의 문서와 비교해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중요도는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일본은 동맹국·동지국 간의 네트워크를 중층적으로 구축하고 확대해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미한, 일미호(호주) 등의 틀을 활용하면서 호주, 인도, 한국, 유럽제국, 아세안 제국, 캐나다, NATO, 유럽연합 등과의 안전보장상의 협력을 강화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독도영유권에 관해서도 2013년 문서는 국제법을 바탕으로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방침에 따라 끈질기게 외교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2022년 문서에서는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이에 관한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의연하게 대응하면서’라는 표현을 추가하여 독도 관련 기술도 강화했다.
이처럼 9년 사이에 한국과의 안보협력 범위와 우선순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일본 외교·안보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과 중요성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희망적 관측이나 선의에 기대는 대일 외교는 짝사랑에 그칠 것이다. 대통령 주변에 일본을 잘 알고 전략적 사고에 능한 브레인이 없다는 것도 심히 우려스럽다.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이 “그간 정체되어 온 한일관계를 협력과 상생 발전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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