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로 글로벌 은행 시스템의 위기 전염 우려가 다소 가라앉았다. 하지만 퍼스트리퍼블릭의 뱅크런, CS AT1 채권발(發) 자금 경색 등 위기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20일(미 동부시간) 지난주 미국 11개 대형 은행이 예금 예치를 통해 긴급 수혈에 나섰던 퍼스트리퍼블릭의 주가는 47% 급락했다.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이 전날 신용 등급을 강등한 데다가 JP모건 등 대형 은행이 추가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에 주식 매도세가 강화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JP모건을 주축으로 대형 은행들이 퍼스트리퍼블릭에 투입한 300억달러 중 일부 혹은 전부를 자본으로 전환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각이나 외부 자본 투입 등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의 주가도 약 7% 밀리는 등 뱅크런 우려가 여전한 은행들의 주가는 맥을 못 추고 있다.
CS 불씨도 여전하다. UBS의 주가는 이날 16% 급락한 뒤 1% 상승 마감하는 등 주가가 요동쳤다. 시장은 CS 인수로 UBS의 건전성이 취약해질 수 있는 점을 우려한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UBS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 등을 반영하는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장중 한때 2.6%대를 돌파했다. 지난 주말에만 해도 1.8% 수준이었다.
이번 인수 과정에서 CS의 AT1(코코본드) 채권 가치가 한순간에 제로가 된 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AT1 채권은 발행한 기관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상각할 수 있어, 위기 시 부채를 줄이는 도구로 작동한다. 은행 위험을 납세자가 아닌 채권 보유자에게 이전하기 위해 도입됐다. 때문에 일반 채권보다 더 높은 이자율을 지불한다.
CS를 포함한 유럽 금융기관들은 채권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AT1을 마케팅했고, AT1은 투자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CS가 지난 2020년 8월에 금리 5.625%로 15억 달러 규모의 AT1 채권을 발행했을 당시, 뜨거운 수요에 금리를 5.25%까지 낮춘 바 있다. CS는 2021년에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코코본드 시장은 약 3.62%의 수익률을 제공한다”며 “유럽 하이일드 채권 금리가 약 2.88%인 점을 볼 때 후순위 채권 시장에서 가치가 높다”고 분석했었다.
미결제 AT1 채권 규모는 약 2540억 달러로 추정된다. 세계 주요 은행 가운데 AT1 채권을 발행한 은행은 대부분 유럽에 몰려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프랑스가 AT1 채권의 약 290억 유로로 비중이 가장 크다. 이어 스페인(약 220억 유로), 독일(약 170억 유로) 등 순이다. 기관별로 보면 자산 대비 AT1 채권을 가장 많이 발행한 은행은 CS와 UBS 외 영국 바클레이스, 스탠다드차타드,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 등이다.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UBS의 AT1 가치는 지난 17일 93센트에서 이날 약 85센트로 하락했다.
특히 CS 주주들이 UBS 주식을 얻은 반면 AT1 보유자들이 한 푼도 못 건지자, 스위스 당국의 결정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롬 레그라스 액시엄 얼터너티브 인베스트먼트의 매니징 파트너는 “누구나 AT1이 위험한 상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주주를 포함해 모든 가치가 0이 됐다면 시장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근래 AT1 채권 시장 분위기가 가뜩이나 안 좋았던 점에 비춰, 은행들은 향후 AT1 채권 발행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어드밴티지 데이터에 따르면 도이체방크의 12억5000만 달러 규모 AT1 채권(6%)은 지난주에 10% 하락한 약 79센트, UBS의 25억 달러 AT1 채권(7%)은 약 5% 하락한 95.50센트에 거래됐다.
WSJ는 AT1 채권의 발행 비용이 비싸져,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줄일 것으로 봤다. 유럽 대형 은행들이 AT1 채권 발행에 난항을 겪을 경우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증자에 나서거나 위험 자산을 줄여야 한다. 조달 비용 상승에 직면한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