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은행 예금을 전액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시스템 위기 우려에 지역 은행과 중형 은행에서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블룸버그는 20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보호 한도를 일시적으로 인상하는 조치를 실행할 충분한 법적 권한이 있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를 거쳐야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반영한 특별조치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예금자 보호 한도는 계좌당 25만달러(약 3억 3000만원)인데, 한도가 낮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재무부는 법적 권한 사용 여부와 함께 외환안정기금(ESF)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SF는 연방정부가 비축해 놓은 자금으로 재무부 장관 권한으로 지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ESF는 외국 정부를 위해 사용되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서도 은행 유동성 기금을 위해 설립한 신규 기금(BTFP)에 사용됐다. 당시 재무부는 BTFP 지원을 위해 ESF 250억 달러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금융 당국은 이와 같은 비상조치를 사용하지 않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SVB 파산 이후 금융당국이 나서서 비보험 예금까지 보호한 뒤 시장이 안정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긴장도 풀지 않고 있다. 이날도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유동성 우려가 가지 않으면서 주가가 47% 급락했다. 실버게이트, SVB, 시그너치은행에 이어 파산 가능성을 금융당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마이클 키쿠카와 백악관 대변인은 예금 전액 보장 방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지역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사용 가능한 도구들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부와 규제 당국이 지난주 결정적 조치를 단행한 후 미국 전역 지역 은행들의 예금이 안정됐고, 일부는 자금 유출이 다소 역전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 중형 은행 연합은 소규모 은행들이 현재 금융 위기를 버틸 수 있도록 FDIC의 예금 보험 한도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제한으로 예금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무제한 예금 보장을 실행해야 "소규모 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금융을 안정시키며 은행 파산 가능성을 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SVB 파산 이후 시중자금이 대형 은행으로 쏠리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것이다.
한편 미국 정치권에서는 예금 보장 금액 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마이크 라운즈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공화당 의원은 FDIC의 예금 보장 한도인 25만 달러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다. 라운즈 의원은 이 한도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 은행은 자신들이 대형 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확약'을 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외부 소비자들이 이들 모든 은행이 안정적이라고 인식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모든 예금을 전액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 모임인 '하원프리덤코커스'는 성명을 통해 "모든 은행 예금에 대한 전액 보장은 무책임한 행동을 장려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