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커지는데 관련 법‧제도,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투자자와 프로젝트 개발자, 거래소 등이 모두 혼돈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법복을 벗은 이정엽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가상자산레귤레이션 센터장(52‧사법연수원 31기)은 "가상자산 산업화에 있어 '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난 몇 년간 체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자산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당국이 '이거 증권이다'라면서 규제를 하고 개발자는 '아니다'고 반발하면서 행정소송을 하게 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대법원 판례로 형성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하나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불법 상장 수수료, 이른바 '상장피(fee)' 이슈다. 상장피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자체 발행한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 거래소 측에 건네는 '뒷돈'이다. 일부는 상장피를 받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부실 코인’을 상장시키기도 했다. 가상자산 상장과 상장폐지 관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초래된 것이다.
그는 "이미 가상자산을 다 발행한 다음에 상장할 때는 레귤레이션을 맞출 수가 없다”며 “가상자산 설계 단계에서부터 프로젝트들이 원하는 바와 규제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여러 의사를 만나러 떠돌지 않고 한 병원에서 잘 치료받게 하듯이 고객사에 가상자산 법률 자문과 세무·회계·특허·컨설팅을 포괄한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장판사에서 가상자산 전문가로···"검경 가상자산 사건 적체 심각"
이 센터장은 법원 내 이른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였다. 비트코인을 몰수해야 하는지, 채권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등 가상자산과 관련한 새로운 현안이 법원에 들이닥칠 때마다 동료 판사들에게 자문과 조언을 제공했다. 법관들은 예전부터 '좋은 재판'을 위한 공부 모임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센터장은 법원 안팎 각계각층이 한데 모여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그는 "주로 공부 모임을 만들면 판사들이 위주인데 우리 공부 모임은 법조인에 한정하지 않고 외부에 완전히 오픈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법원 안팎에 많이 알려져 있다"며 "자칫 판사들이 로비 대상이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외부 관계를 많이 차단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 관련 민사‧형사 사건, 회생 사건 등을 재판하는 판사들이 자문을 많이 요청해왔다. 자문 빈도도 점점 늘었다"며 "현재 가상자산 관련 사건들이 많이 계류돼 있는데 블록체인을 몰라 수사나 검찰 송치, 기소 등이 지연되고 적체될 때가 많다. 가상자산 판례백서도 쓰고 있는데 관련 사건들이 해결되는 데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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