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근절을 위한 보완 입법 방향을 주제로 23일 진행된 '2023 부동산 입법포럼'에서 전세사기는 '제2의 금융위기'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세거래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공인중개사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부동산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인에 대한 정보열람도 확대돼야 한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에 따른 역전세 문제를 전세사기와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해 활용되는 재원은 결국 국민들의 혈세인 만큼, 정책 마련에 앞서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어야 한다는 데도 대체로 공감했다. 또 이 과정에서 선의의 임대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역전세≠전세사기...임차인 우선매수권 부여, 정보 비대칭성 개선해야
이날 토론에는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이장원 국토부 주택임차인보호과장,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임재만 세종대 산업대학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 김성용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 연구실장,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 등이 참석해 전세사기 보완 입법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임재만 교수는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일 정도로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강해 '빌라'와 같은 서민형 주택 분양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빌라를 지은 건설업자들이 엑시트(탈출)할 전략이 없어 전세라는 제도와 보증금 반환보증이라는 일종의 국가보증을 통해 바지 임대인을 내세워 엑시트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공고화됐다"면서 "미국의 모기지론과 모기지저당증권(MBS)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부추긴 것처럼 한국도 전세대출과 전세금반환보증제도가 엮이면서 이번 전세사기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 전세제도 보완을 위해서는 △취약계층 보호 △금융시스템 붕괴 방지 △도덕적 해이 방지 등 3가지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에게 주택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거나 보증금반환채권을 공공이 매입하는 방안을 비롯해 전세대출 세입자에 대한 적극적인 채무조정, 민간임대주택등록 의무화 등 기존 전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피해자 구제는 경제의 효율성은 물론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전세계약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 간의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공공이 이를 모두 통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전세 물건과 관련된 시세정보 공개, 이해관계자들의 상호 감시나 책임부여, 사기 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 등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세사기와 함께 주택가격 하락 변동에 따른 역전세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전세=사라져야 할 제도'로 인식되거나 역전세로 인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 임대인을 '악성 임대인' 혹은 '전세 사기범'과 동일시하는 일방적 주장은 사태해결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전세는 (임차인들에게) 월세보다 확실히 유리하기 때문에 임대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공개해야 한다는 식의 강압적인 주장도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결하는 동시에 선한 임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장원 과장은 "사기가 재발하는 구조를 막고, 사기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처벌과 조사를 강화하며, 피해자 구제 방안을 마련하는 등 3가지에 정책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세를 부풀리는 행위를 막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이어 "악성임대인 퇴출을 위해 전세대출보증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부 있지만 너무 심사를 강화하다 보면 선의의 서민들이 제도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면서 "전세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악성 임대인들을 처벌하는 것이지, 이로 인해 대다수 선의의 임대인들이 피해를 봐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적정 수준과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계속 논의 중인 만큼 조만간 유의미한 보완 방안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개협회 "책임 통감...중개사 역할, 윤리의식 강화"...임대인협회 "보증보험 문턱 낮추고, 독점 시장구조 개선"
김성용 연구실장은 "주택가격이 높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전세사기의 80%가 집중됐는데, 이 과정에 중개사의 책임이 상당하다는 데 사죄드린다"면서 "중개사들도 재발 방지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재 50가구 이상만 정보가 제공되는 정부의 '안심전세앱' 서비스 한계를 보완해 50가구 미만 소규모 주택의 시세도 협회 차원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면서 "임대인의 미납 세금 정보를 국세뿐 아니라 지방세로 확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중개인의 확인설명 의무와 윤리교육을 더 강화하는 등 협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성창엽 회장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 주택 비율이 2024년에는 30%에 육박한다는 발표 자료가 있을 정도로 전세사기, 역전세 위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최근 대책이 사후약방문 식의 법률과 일부 제도 개선에만 매몰돼 근본적인 해법이 아닌 '빌라 전세'에 대한 공포심만 부각해 오히려 미반환 위험을 부추기는 측면으로 흘러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임차보증금 보증은 가입요건을 갖추면 전액을 보증하고, 그렇지 못하면 보증이 거절돼 주거안정에는 매우 취약한 구조"라면서 "물건에 따라 합리적인 가격을 산정해 보증기준 금액을 산정하고 임대인 누구나 해당기준에 충족되는 금액을 보증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하면, 시장 원리에 따라 보증액이 낮거나 선순위채권이 있는 임대물건은 자연스럽게 임차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회장은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SGI서울보증, 한국주택금융공사(HF) 등 3개사로 제한된 전세금 반환보증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보증기관 간의 요율을 조정하고 개방시장 체제를 도입해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보증가입 불가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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