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자유화와 이에 따른 무역 증가는 국내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득분배 악화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무역 증가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도 소득분배 악화를 최소화한 모범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주요국 지니계수를 보면 한국은 1980년 이후 30∼35 수준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중국과 미국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소득불평등도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확대는 한국 제조업의 고용과 임금에 긍정적인 요인이었다. 제조업은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임금을 주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한국 제조업 종사자 수는 2005년 413만명에서 2019년 443만명으로 증가하였다. OECD 국가의 제조업 일자리가 오히려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시간당 실질임금도 2001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2.8% 증가하였는데 이는 OECD 평균인 0.6%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속적인 수출 증가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는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 것이다. 이처럼 장기에 걸친 무역 확대와 이에 기반한 경제성장, 그리고 양질의 고용과 소득의 창출은 한국 경제 성공의 기본적 법칙이었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 국민은 현재의 생활수준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무역 확대를 촉진하도록 해 준 세계 경제 환경의 성숙과 우리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 국민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한국 경제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부채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로 우리 정부, 그리고 우리 자신의 과오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도박중독에 빠진 경제였다. 요즘 인기 있는 ‘카지노’라는 드라마를 보면 도박 중독에 빠진 자가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탕의 고수익에 맛이 들린 사람은 더 이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만족하지 못한다. 고수익의 그 짜릿한 기억은 더욱 모험적이고 위험한 투자로 그를 몰아친다. 그리고 그는 결국 파멸에 이른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는 과연 현실의 우리와는 무관한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카지노 고객들을 보았고 고객을 유인하면서 빚을 권하는 카지노 직원을 보아 왔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카지노 경제’였고 우리는 ‘빚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그가 파멸에 이를 것이라 알지만 정작 현실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우리는 자신이 파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 모두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함께하면 비정상도 정상이 된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해도 비정상은 비정상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빚으로 쌓아올린 허무한 거품이 얼마나 가혹한 대가를 요구하는지는 과거 일본의 거품 붕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내적으로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초를 제공해 주던 세계 경제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자유무역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첨단 분야의 디커플링이 점차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AI, 양자컴퓨팅 등 차세대 첨단산업의 디커플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내수 확대와 자립자강으로 이에 대응한다.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의 성장잠재력은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중국의 고속 성장에 기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이미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결과일까. 2022년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478억 달러 적자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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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국내 현실은 참으로 한심하다. 여전히 카지노 경제의 짜릿함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거품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누군가의 피눈물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정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동안 유동성에 취하여 마치 부자가 된 양 흥청대던 우리 모습을 이제 자세히 들여다볼 때다. 그 모습은 과연 아름다운가? 아니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추한 모습인가?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려 하고, 마음에 맞는 나라들끼리 기술 개발하고 투자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배척하고 비난하는 험난한 국제사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언제까지 허공을 바라보며 맛있는 감이 떨어지기를 바랄 것인가? 맛있는 감은 나무를 심고 가꾸고 따야 먹을 수 있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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