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자 칼럼] 양육비 지급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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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자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
입력 2023-04-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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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아이들은 양육비를 제대로 받고 있는가

 

[김학자 변호사] 


  
여성가족부의 ‘2021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의 10명 중 8명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2021년 하반기부터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이 시행되어 출국금지, 운전면허정지, 명단공개, 감치 등의 여러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불만과 문제 제기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지난 3월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찾는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애쓴 노력만큼 충실한 발제와 책임있는 여러 기관 관계자들이 나와 토론도 잘 끝나간다고 생각할 무렵 청중에게 질문기회가 주어지자 숨죽이며 듣고 있는 엄마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이는 분노하여 소리쳤고 어떤 이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지원단체와 국가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을 이어갔다. 잠시 당황하다가 차분히 그분들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소리치던 이들의 눈에는 조금씩 눈물이 고이고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던 다른 엄마들의 눈에도 하나둘씩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사연을 들어보면 곧바로 이해되었다. 자식을 낳고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전화번호도 바꾸고 주소도 변경했다가 어렵사리 알아내어 연락을 취하면 요리조리 피하고, 법원의 이행명령이 내려져도 무시하고,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이라는 감치명령은 주소를 여기저기 옮기면서 집행을 못하게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송달이 된 후에는 몇 번 양육비를 주다가 다시 안주고 연락을 끊고 잠적하였다. 어떤 이는 잘사는 부모와 함께 살며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도 자신 명의로 재산이 없다고 발 뻗어버려 현행법으로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과태료나 벌금을 내더라도 차라리 그게 싸다며 양육비는 못 주겠다고 한다고 했다.
 
법에는 부모는 자식 출생과 동시에 양육할 의무가 있다고 써져 있다. 같이 살건 헤어지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을 양육할 책임을 지는 것은 법 때문이 아니라 인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부모 가정의 빈곤율은 OECD국가 중 2018년 47.7%로서 양부모 가족 빈곤율 10.7%보다 4배가 넘고, 노인빈곤율 40.4%보다 높다. 제대로 된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양육비 지급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18세 미만의 아동들에게는 생존을 의미한다. 아동학대법에 의하면 가정 내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안주면 학대죄로 처벌되고 때론 살인죄 적용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우유와 쌀을 사야 할 양육비 지급을 불이행하는 경우 처벌까지는 몇 개의 허들을 거쳐야 하고 그나마 처벌도 약하다(실제 감치명령 집행률 자체가 2020년 기준 6%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1975년 연방 차원의 정부기관으로 양육비정책 전담기구(OCSE)를 두고 각 주 단위에 집행기관을 설립하여 근로소득, 보너스, 연금 등 장부 급여 등 소득에서 양육비를 자동으로 원천징수하게 하고 있다. 이는 양육비 체납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주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75%정도가 이렇게 징수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양육비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각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아동청이 담당하고 있고, 그 성격은 지방행정조직의 한 종류이다. 그리고 양육비 선급제도를 갖고 있어서 선급청구가 들어오면 선급여부와 기간 등을 결정하여 지급하고 부양의무자에게는 구상권을 행사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자녀양육법에 근거하여 국세청에서 자녀양육비 이행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자녀양육비는 개인 채권자가 아닌 정부에 대한 채무가 되고, 만약 이행하지 않는 경우 자동공제로 추심할 수도 있다. 이렇듯 양육비 이행률이 높은 나라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양육비 이행을 담당하는 곳은 국가기관이고, 합의든 판결이든 정해진 양육비에 대해 별도 법원의 이행명령 없이도 지급청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는 양육비 이행의 실효성읗 확보하기 위해 2014년 양육비이행법을 제정하고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독립적 기관이 아닌 여성가족부 산하의 재단법인인 한국건강가족진흥원에 설치하였는데 처음에는 원장 직속의 부서로 설치되었다가 그나마 2021년 조직개편을 하면서 상임이사 산하 본부 중 하나로 그 지위를 강등하였고 인원도 대폭 감축하였다. 양육비 이행에 대해서는 국민도, 국회도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오히려 그 지위와 상황은 약화된 것이다.
 
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제대로 양육비 이행강제를 위해서는 양육비 채무자의 소재와 재산파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용이해야 하지만 독립기관이 아닌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그 정보를 얻으려면 한국건강가족진흥원의 내부결재 절차를 거쳐 여성가족부에 올리고 여가부에서는 다시 담당부서로 넘어가 행정부에 정보를 요청한 다음 받으면 그 역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신속한 절차 진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이행관리원이 독립된 법인체가 아니어서 소속 변호사는 개인 명의로 선임계를 내고 있어 변호사가 교체되는 경우 새로 온 변호사는 소송 진행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는 양육비이행법을 개정하여 한부모가정의 긴급양육비 지원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등의 개선내용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담겨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획기적으로 양육비 이행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당사자간 합의 또는 판결에 의해 양육비가 이미 정해졌는데 별도로 왜 법원의 이행명령이 필요한지 의문이 있다. 따라서 합의 또는 판결에 의해 이미 양육비 채권이 결정된 이상 공신력있는 양육비이행 담당기관이 바로 집행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양육비 집행 신속과 이행률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독립과 지위 승격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출산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미 출생한 아이들 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데 누가 낳으려고 할까, 그리고 낳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양육비 지급문제는 사적 영역이 아니다. 우리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다. 지금처럼 과거에 했던 그대로를 답습하거나 기존 테두리 내에서만 조금씩 개선시키려고 하지 말고 획기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혁하여 양육비 지급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때이다.  


김학자 필자 주요 이력 

△한국여성변호사 회장 △ 대한변협 부협회장 △전 대한변협 인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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