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도 신용등급과 업황에 따라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신용등급 AAA~AA인 우량채에 대해서는 꾸준히 투자 수요가 이어지고 있지만 A등급을 비롯한 그 이하 등급에서는 업종별로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달 들어 건설채는 부동산 불황에 등급과 상관없이 발행 자체가 전무한 상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분간 크레디트 스프레드 확대 현상으로 이 같은 양극화 조짐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 AA인 SK이노베이션은 전날 3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조7300억원이 몰렸다. 3년물(1000억원)에 7200억원, 5년물(1200억원)에 6400억원, 7년물(400억원)에 2500억원, 10년물(400억원)에 1200억원 등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SK이노베이션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2021년 1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같은 날 AA- 등급인 LX인터내셔널은 기존 1000억~2000억원 사이로 정했던 회사채 조달 금액을 2000억원(2년물 300억원, 3년물 1000억원, 5년물 700억원)으로 확정해 발행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공시 내용에 따르면 1회 차에 1800억원, 2회 차에 9000억원, 3회 차에 1600억원을 모집하며 주문은 총 1조2400억원이었다. 한온시스템(AA-)도 전날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기존 모집액보다 3배 이상(4950억원) 자금이 몰렸고, 그 외 GS리테일(AA), 신세계센트럴시티(AA-) 등도 지난 17일 수요예측에서 완판됐다.
이에 따라 회사채 시장에서는 A등급 이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 신용등급 BBB+인 대한항공은 전날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2년물 3215억원, 3년물 2770억원 등 총 5985억원을 주문받았다. 이에 대한항공은 2500억원까지 증액해 발행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 역시 회사채 시장에 온기로 이어지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재 크레디트 시장은 부동산 이슈 등 여러 국내외적인 불안 요소로 양극화된 상태"라면서 "이 때문에 상위 등급으로 수요예측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특히 A등급과 그 이하는 차별화가 심하다"면서 "BBB급은 리테일 수요가 존재해 개인투자자가 모호한 A등급 채권에 투자하기보다는 금리가 더 높은 BBB급을 선호해 그중에서 잘 알려진 대한항공을 골랐다"고 이유를 들었다. 즉, 비우량채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대한항공에 수요예측이 몰렸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같은 등급 내에서도 업황별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채 가운데 지난 2월과 3월 HL D&I (BBB+), 한신공영(BBB+), 신세계건설(A)이 미매각됐다. 지난 3월까지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한 곳은 HL D&I(BBB+), SK에코플랜트(A-), 현대건설(AA-), 한신공영(BBB), GS건설(A+), 신세계건설(A) 등 6곳이다. SK에코플랜트는 2월 16일 총 1000억원 모집에 5080억원이 몰렸다. 우량채인 현대건설을 제외하고 비우량채 중 수요예측에 성공한 곳은 SK에코플랜트가 유일하다.
한국기업평가는 대한항공 신용등급 전망도 BBB+(안정적)에서 BBB+(긍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리오프닝 효과로 실적 호조가 지속되고 이를 통한 이익 창출이 유지될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3.2% 증가한 13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사실상 업계에서는 A급 대우를 받고 있다.
반면 같은 항공업이라도 타 기업들은 발행 자체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시절부터 영구채와 전환사채(CB)를 많이 발행했지만 높은 부채 비율 등 때문에 추가 발행은 어렵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지배적이다. 결국 같은 업종이어도 수익성 개선 없으면 투자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건설채는 투자 시장에서 계속 외면당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스프레드 수준은 올해 말까지 더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기 보유자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구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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