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하고,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정례 배치하기로 했다. 전략자산의 노출 빈도를 높여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기로 한 데 따른 국민의 안보 불안을 줄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NCG가 향후 한·미·일 지역협의체 등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26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NCG 신설 등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NCG는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논의하며, 북한의 핵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차관보급 범정부 상설협의체 형태로 운영된다. 1년에 4차례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갖게 된다. 회의 후에는 결과를 양국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이행체계 수립에 반영할 예정이다. 기존에 운영되던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는 별도로 운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핵잠수함을 포함한 전략자산 전개를 확대할 것”이라며 전략핵잠수함을 콕 짚어 언급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반도에 전개했던 B-52H·B-1B 폭격기, 공격핵추진잠수함(SSN), F-22와 F-35 스텔스 전투기, 핵 추진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에 SSBN까지 포함하겠다는 의미다. SSBN은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 추진 잠수함이다. 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전략핵잠수함 전개는 1980년대 이후 처음이다.
한·미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하고 한반도에서의 핵 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훈련을 강화하기로 한 점도 이목을 끈다. 이는 북한의 핵 위협과 실제 사용 등 단계별로 대응하는 실전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실행하는 ‘핵 작전’에 한국의 전투기 등 자산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한·미 간 정보 공유·협력 수준이 ‘파이브 아이즈’급으로 격상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어를 사용하는 5개국의 정보협의체다.
NCG는 향후 한·미·일 지역협의체 등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도 한·미·일 3자 협력을 언급하며 “한·미는 같이 협력함으로써 일본과의 3자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이 지역의 미래가 보다 자유롭고 번영하고 안보가 담보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는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 워크’도 체결했다. 한국 국가안보실장과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하는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설립해 첨단 기술 협력을 총괄하는 고위급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도 이번 정상회담의 특징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미국 주요 군 시설을 직접 찾아 군사·안보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미 국방부를 방문했다. 오스틴 미 국방 장관과 별도 환담한 뒤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국가군사지휘센터(NMCC)를 방문해 전략적 감시체계와 위기대응체계에 대해 보고받았다. NMCC는 미 국방부 내 핵심 지휘통제센터로, 유사시 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군 지휘관들을 직접 보좌하는 미 국방의 핵심 시설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외국 대통령 최초로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방문한다. 기술 혁신에 필요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연구 환경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나아가 한·미 양국의 국방 과학기술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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