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임기를 시작하여 재선에 성공한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인 2019년 8월 수도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수도 이전 문제가 간간이 제기되었기에 혁신적인 정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도네시아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계획을 두 번째 임기를 목전에 두고 발표하리라고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신수도는 칼리만탄섬 동부로 낙점되었는데, 이곳은 인도네시아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역이다. 신수도의 명칭은 누산타라(Nusantara)로 정해졌다. 산스크리트어에 기원을 둔 이 표현은 군도를 의미하며,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를 지칭하는 토착적 표현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신수도의 위치와 명칭은 다양성에 기반을 둔 인도네시아 사회의 통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야심 차게 시작된 신수도 프로젝트는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동력을 상실하는 듯했다. 사그라드는 불씨를 살려내기 위해 조코위 대통령은 2021년 9월 신수도법 제정을 요청했고, 2022년 초 8개 원내 정당 중 7개 정당의 찬성으로 의결되었다. 법안 통과 후 채 4개월이 지나지 않아 수도 이전을 담당할 신수도청이 발족하여 구체적 행보를 시작했다. 다른 법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기간 내에 신수도법이 제정되고,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게 신수도청이 구성된 점은 신수도 프로젝트에 대한 대통령과 정치권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속한 일 처리 과정과 달리 2024년을 기점으로 조코위 대통령의 공언처럼 신수도가 출범할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 수도 이전의 첫 단계에 포함된 대통령궁 이전과 2024년 8월 17일 독립기념식 개최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듯하다. 하지만, 다양한 이익 집단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3~4개 행정부처의 이전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그 이후의 상황은 더욱 불투명하다. 인프라 구축에 걸리는 시간이라는 현실적 문제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초래한 주된 이유는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가 2024년 끝나며 실질적 이전 과정이 차기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수도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확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의 임기 만료는 신수도의 운명이 차기 권력에 의해 좌우됨을 시사한다.
신수도 이전의 근거로 우리 언론에서 주목한 측면은 현 수도인 자카르타의 지반 침하 문제이다. 추산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연간 많게는 25㎝부터 적게는 5㎝ 내외까지 지반이 내려앉고 있으며, 바다에 접해 있는 북부 지역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아질 정도로 자카르타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지반 침하를 초래한 인구 밀집과 과도한 도시화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신수도 이전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비칠 수 있다. 매년 25㎝씩 가라앉는 자카르타를 보면서 신수도와 같은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이는 정치인의 책임 회피로 규정될 수 있다.
지반 침하가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외부의 인식과 달리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있어 그것이 절체절명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북부 해안가의 침수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자카르타 주민이 이 문제를 경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수도 이전이 필수적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대형 방파제를 건설하고 제방을 높이 쌓는 것과 같은 기술적 방식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식의 인식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이러한 낙관적 태도는 신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한다.
지반 침하와 비교할 때, 수도권으로 집중된 개발과 그에 따른 문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조코위 대통령 역시 개발 격차를 신수도 이전의 핵심 논리로 설정했다. 하지만,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논리를 통해 신수도 이전을 정당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균형 발전을 모색할 방안이 반드시 신수도 이전이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수도 이전 담론이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됨으로써 환경 문제가 내포하는 절박함이나 필연성을 부각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신수도에 대한 인도네시아 사람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다.
신수도 계획 발표 후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는 대략 찬성 40%, 반대 40%, 보류 20%였다. 신수도 법안이 공포된 후 시행된 여론 조사에서도 큰 변화가 표출되지 않아서 2022년 후반부로 갈수록 찬성 견해가 조금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정도였다. 이러한 결과는 신수도 프로젝트가 상당한 정도의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자료를 해석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측면은 지난 몇 년 동안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60%대를 유지했고 때로 70%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압도적인 지지세와 비교한다면, 신수도에 대한 지지도는 높은 편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지자 중 상당수가 신수도 이전에 반대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하다.
신수도 이전이 자신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함에도 조코위 대통령은 이전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입법화가 이루어지고 신수도청이 출범함으로써 신수도 이전이 되돌릴 수 없는 정책으로 확립되었다는 인식이 소극적 행보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법적·제도적 불확실성의 해소 여부와 관계없이 신수도의 운명을 가름할 핵심 요소는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가 2024년 종료된다는 사실이며, 이로 인해 이전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전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신수도의 미래에 대해 고려할 때 차기 대통령의 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세 명의 후보자가 선두에 서 있다. 한 명은 조코위 대통령과 같은 정당의 후보자이고, 다른 한 명은 조코위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며, 다른 한 명은 전직 자카르타 주지사이다. 이들 세 명의 유력 후보자뿐만 아니라 출마가 예상되는 다른 후보자 모두 신수도 이전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수도 이전을 강하게 반대하는 정당이나 시민사회 단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구도 신수도 이전이 계획에 맞추어 진행되리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신수도 이전이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수도 이전이 한국과 달리 육로로 연결된 지역으로의 이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직선거리로 자카르타에서 대략 1300㎞ 떨어져 있으며, 바다를 건너 2시간 이상 비행기로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공무원에게 있어 이전은 생각해보고 싶지 않은 선택지이다. 이들 중 누구도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 않지만, 누구도 신수도로의 이전을 기정사실화하지 않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이 제안한 단계적 이전 계획 역시 그 표면적 명확성에도 불구하고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임기 내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그는 대통령궁 건설과 이전을 첫 단계로 설정했지만, 대통령은 신수도에, 절대 다수의 국무위원은 자카르타에 있는 상황에서 국무회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차기 대통령의 행보를 기다려보자는 태도가 주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바의 농촌에서 현장 조사를 수행할 때였다. 당시 경험한 특이한 상황 중 하나는 집과 모스크, 학교와 같은 건물을 짓는 과정이었다. 집짓기를 예로 들면, 주민 누구도 필요한 자금을 모두 모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비를 피할 정도의 구조물을 건립할 자금이 모이면, 이들은 집짓기를 결행했다. 원하는 만큼의 구조물을 만든 후 자금이 떨어지면 이들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집으로 이사했다. 여기에 살면서 여유 자금이 생길 때마다 이들은 유리창을 설치하고,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바닥에 타일을 까는 등 보수 공사를 지속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집짓기를 시작하고 십여 년이 흐른 뒤에야 집을 완공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집을 완공할 자금을 모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인 시간 이용이며 완성되지 않은 집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 방식이었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이러한 집짓기 방식은 신수도 이전 과정을 예상해보기 위해 적용될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언제까지 이전을 완결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이 신수도 이전에 소극적이라면, 이전의 속도는 늦추어지게 될 것이다. 이전에 적극적인 대통령이 다시 출현한다면 그 과정은 보다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신수도 이전이 입법화됨으로 인해 그 이행 속도를 대상으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언젠가 미래의 한 시점에 신수도 이전이 완성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질 것이며, 이 시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자카르타는 수도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 Universitas Padjadjaran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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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이 가능한 얘기군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