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SR에 출자 추진...철도 운영사 경쟁체제 본격화되나

정부가 수서발 고속열차 운영사인 에스알(SR)에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역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수서발 고속열차 운영사인 에스알(SR)에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존 투자자들이 내달 만기인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SR의 부채비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에스알이 오는 9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단독으로 운영해온 경전선(창원·진주)과 전라선(순천·여수), 동해선(포항)을 신규로 운행하는 등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를 계기로 코레일과 에스알의 경쟁 구도가 더욱 본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정부출자기업체 범위에 에스알을 포함하는 방안을 담은 국유재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에스알의 운행노선 확대와 고속철도 차량을 추가 도입하기 위해선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오는 9월부터 SRT 운행 노선은 기존 경부·호남 고속선에서 경전선, 전라선, 동해선으로 확대된다. 선로용량과 차량, 지역 간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전선, 전라선, 동해선에 하루 4회씩(왕복 2회) 동시 운행을 추진한다. 2027년까지 선로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른 평택~오송 구간을 2복선화하고, SRT 차량 14편성을 추가 도입하는 등 열차 증편도 검토 중이다.

다만 현재의 계획을 추진하기에 에스알의 자금 상태는 좋지 않다. 에스알의 부채총액은 지난해 기준 5770억8100만원으로 부채비율 226.9%에 달한다. 정부가 에스알을 정부출자기업으로 편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재무구조의 어려움으로 인해 차량 구매가 더 지연되면 오는 9월 에스알이 담당하게 될 신규 운행 구간이 개통되더라도 운행 횟수 확대가 불가능해 이동 편의 개선에도 한계가 생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에스알에 대해 출자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현금출자 또는 정부가 갖고 있는 자산을 에스알에 넘기고 에스알 주식을 인수하는 현물출자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에스알의 지분 구조는 최대주주인 코레일이 41%를, 나머지 59%는 사학연금(31.5%)·기업은행(15%)·산업은행(12.5%) 등 공적투자자가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앞서 2014년 에스알 출범을 위해 코레일은 이들 기관을 투자자로 유치하면서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6월 17일 만기 예정으로 풋옵션 총액은 투자원금 1480억원, 이자 780억원을 더해 226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에스알의 운행노선 확대와 신규 차량 추가 도입 등 안정적인 사업 추진 기반 마련을 위해 자본금을 조속히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출자 규모와 방식에 대해서는 기재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풋옵션이 시행될 경우 에스알의 부채 비율이 철도사업 면허조건인 150％ 이하를 유지할 수 없게 되니 정부가 특혜성 출자를 한다는 입장이다.

철도노조는 지난 19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국유재산법 시행령 졸속 개정으로 에스알에 출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며 "정부가 추진했던 고속철도 경쟁체제 정책 실패의 방증이자 에스알에 대한 부당특혜"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최대주주가 될 경우 향후 민영화를 추진하기가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며 6월 중 준법투쟁과 철도노동자 결의대회 등 강력 투쟁을 예고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부 출자로 인해 코레일이 최대주주 지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철도 공기업 경쟁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코레일과 에스알의 경쟁체제 유지 여부에 대해 '판단 유보' 결정을 내리고 사실상 경쟁체제 유지를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쟁체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된 기간이 3년(2017~2019년)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이후 에스알은 코레일과 체결한 위탁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고 독자 예약발매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독립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정부 출자로 인해 코레일과 에스알의 경쟁 체제가 당분간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손의영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는 "철도산업의 독점구조가 깨지고 코레일과 에스알의 경쟁체제가 구축된 만큼 이런 흐름이 강화되는 것은 필수적인 현상"이라며 "고속철도 서비스의 양적 확대와 품질 향상 지속을 위해서 경쟁체제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