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위험성평가에서 떨어짐 등 사고가 가장 많았습니다. 오늘 작업에서도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비가 왔는데 현장 위험성평가에서 위험요소를 지적해 주실 분 있나요?"(작업팀장)
"수직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미끄러져 떨어질 위험이 큽니다. 위험 없이 이동해야 하겠습니다."(팀원) "좋은 지적입니다."(팀장)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앞에 하청업체 금영산업 근로자 11명이 모였다. 이들은 7분가량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ool Box Meeting·TBM)'를 한 뒤 당일 작업에 들어갔다. TBM은 근무 현장 근처에서 작업팀장(반장)을 중심으로 작업자들이 모여 당일 작업 내용과 안전한 작업 방법에 대해 서로 확인하고 논의·공유하는 활동이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특히 고소·밀폐 작업 같은 고위험 작업이 많아 사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안전보건관리에 관한 원·하청업체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사망 사고 70%가 하청업체에서 일어났다.
HD현대중공업은 선도적으로 위험성평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모범사업장이다. 위험성평가는 작업 중에 생길 수 있는 유해 위험요인을 도출해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위험성을 줄이는 활동을 말한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대표이사)은 "'안전 최우선' 원칙을 기반으로 중대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기마다 안전경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안전·생산 심의위원회를 수시로 개최해 안전 최우선 가치가 위협받지 않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3월에는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안전기획실과 현장 안전을 담당하는 각 사업부 안전 조직을 통합해 안전통합경영실로 개편했다. 최근엔 앞으로 5년간 안전 목표·전략·추진 사항을 담은 '비전 2027'을 마련했다.
작업 중에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스마트폰이나 핫라인 전화로 '안전작업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작업요구권은 근로자가 위험요인을 발견해 신고하면 긴급복구반이 문제를 해결하는 HD현대중공업 제도다. 이날 금영산업 작업팀장도 "작업 중에 위험요소가 보이면 핫라인을 이용해 달라. 나도 이용해 봤는데 5분 안에 해결해 주더라"며 팀원들에게 안내했다.
또한 지난 20년간 발생한 산업재해 자료를 학습한 인공지능(AI) 사고 유형별 발생 확률을 매일 예측해 각 부서로 전달하고 원·하청업체 근로자 모두 안내를 받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원청업체 근로자 1만2700여 명과 하청업체 소속 1만4000여 명이 근무하는 HD현대중공업 사업장엔 최근 1년간 근로자 사망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수시로 이뤄진다. 조선업은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높은 업종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만 27개국 근로자 24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작업표준서와 위험성평가 내용을 중국어·베트남어·태국어 등 11개국 언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별도로 '외국인지원센터'를 운영해 한국어 교육과 행정 지원, 고충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작업 현장과 동일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교육도 실시한다. 새로 입사한 외국인 근로자에겐 이틀간 안전교육을 한다. 입사 7개월이 되면 국적별 4시간 안전교육과 반기 4시간 특별안전교육을 시행한다.
이날은 숙련기능인력(E-7)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안전교육이 이뤄졌다. 자국에서 용접자격증 등을 취득하고 입사한 지 7개월 된 태국·베트남 근로자들이 대상이다. 한국인 교관이 작업 중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면 같은 국가 출신 통역사 2명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통역을 해줬다.
이준엽 HD현대중공업 안전통합경영실 상무는 "자격증이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숙련이 필요한 일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입국 후 1년가량은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통역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봤다. 이 장관은 "조선업은 모든 위험 가능성이 총망라돼 있는데 HD현대중공업은 대기업이자 글로벌 리딩 기업답게 위험성평가를 잘하고 있다. 창업주 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무리 이익이 나도 재해가 많이 나면 그건 아주 가치 없고 삼류 국가의 4등, 5등 회사"라고 말할 정도로 안전을 강조했다.
새로 바뀐 위험성평가 방식에 대해 이 장관은 "이전 위험성평가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현실에 맞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확인하니 새 평가 방식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평가 방식을 단순화하고 근로자 참여도를 높인 개정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을 지난 2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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