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서는 ‘마이넘버’를 둘러싼 문제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마이넘버’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것으로 일본 거주자에게 부여되는 12자리 고유번호다. 한국 주민등록번호와 다른 것은 번호 부여는 자동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번호를 사용할지와 그 번호에 근거한 ‘마이나 카드(마이넘버 카드)’를 발급 받을지 여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이 제도가 도입됐는데 애초에는 마이나 카드가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원래 일본에서는 2002년에 ‘주기넷(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어 모든 주민에게 11자리 번호가 부여되었다. 주민에게 부여된 번호에 여러 가지 개인 신상정보를 연결시켜 행정처리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주민 서비스를 효율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주기넷은 “국민 총 등번호제”라고 불리며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모든 국민(정확하게는 외국인도 포함되기 때문에 ‘주민’)에게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행정에 의해 관리된다는 것, 즉 개인 신상정보가 국가의 손에 주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많은 이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신상정보 유출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이 우려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사회의 개인주의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과거에 국가라는 이름 아래 개인이 전쟁에 휘말려 불행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전쟁관에 따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어쨌든 2000년대 주기넷 도입 당시는 정부 방침에 반(反)해 시스템 접속을 거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오기도 했고, 그 번호와 시스템을 활용한 행정서비스를 거부한 이들도 꽤 많았다. 번호를 활용한 주기카드 보급도 결국 5%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2016년, 마이넘버 제도로 이름을 바꾼 거의 비슷한 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마이넘버 제도는 주기넷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 주민 개개인에게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행정처리와 관련된 정보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보니, 많은 이들이 반발했던 “총 등번호제”라는 비판은 동일하게 적용될 듯하다.
그런데 이번 마이넘버 제도의 경우, 정부가 큰 예산을 들여 적극적으로 보급해 지금까지 약 78%의 사람들이 번호에 기반한 마이나 카드를 발급받는 데까지 나아갔다. 일본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나 세금, 그리고 재난지원 등의 행정절차에 한해서만 번호를 활용하겠다며 시작한 마이넘버 제도지만, 세무서에 제출해야 할 원천징수표나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야 할 급여지급보고서 등에는 마이넘버 제공이 필수다. 또 어느새 금융기관 거래에서도 “협력을 부탁한다”는 식으로 고객들에게 마이넘버 제공을 전제조건처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 가을쯤에는 지금의 건강보험증이 폐지되고 마이나 카드로 대체될 전망이다. 또 올해 4월부터 이미 기존 건강보험증으로 진료를 받는 경우 마이나 카드(마이나 보험증)보다 보험 적용(30% 부담) 시 초진에서 12엔이 비싸지는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증을 폐지한다는 것은 바로 마이나 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에 가지 말라는 소리와 같고, 이는 마이나 카드 취득 의무화와 다름 없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한편, 현금 2만엔 상당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카드 발급을 신청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물며 마이넘버의 활용으로 여러 면에서 생활이 편리해진다면 신청을 미룰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주민등록번호 제도였다. 필자와 같은 외국인 거주자에게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할 수 있는 외국인등록번호라는 유사한 번호가 부여되는데, 앞의 6자리가 생년월일, 뒤의 7자리 중 첫 번째 숫자가 성별을 나타내는 것도 주민등록번호와 동일하다. 다만 외국인의 경우 성별을 나타내는 부분이 5~8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쨌든 당시 한국은 주민등록번호(외국인등록번호)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곳이었다. 휴대폰 계약이나 인터넷 연결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본인확인 절차에 13자리 번호가 늘 요구됐다. 2000, 2010년대에 발생한 대기업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 등으로 제도가 개선되어 이제는 무작정 번호를 요구할 수 없게 됐지만, 본인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외국인등록증)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동시에 그 번호만 있으면 한국에서의 생활은 현격히 편리해진다.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신고 등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할 수 있고, 병원에 굳이 보험증을 가져갈 필요도 없으며, 번호만 있으면 신분증 제시도 불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생활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있기 때문에 간편화되고 있는 절차가 수도 없이 많다. 코로나 팬데믹 때 “K방역”이라고 불리던 한국의 철저한 방역체제가 가능했던 것 또한 주민등록번호와 연결된 많은 개인정보가 활용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
필자도 그런 편리한 한국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는 데 많은 고생을 겪었다. 일본 국적자지만 일본 사회가 한국처럼 만능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갖추지 않다 보니 본인확인 절차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한국에 살면서도 꼬박꼬박 갱신해놓았던 일본 운전면허증과 일본 신용카드가 있었기에 휴대폰을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다른 본인확인 절차도 진행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운전면허증이나 건강보험증, 혹은 여권 등과 행정에서 발행해주는 종이 호적등본이나 주민표 중 여러 개의 증명서를 대조해 본인확인을 한다.
그러던 일본이 지금 마이넘버 제도를 널리 보급하려 하고 있다. 일단 보급되면 지금 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듯이 그 편리함은 일본 사회에 금방 침투될 것이다. 다만, 1962년 도입된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제도가 과거 불순분자 식별을 위해 널리 보급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주민 개개인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함으로써 개인정보를 일원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의 효율성과 아울러 위험성이 지적될 수밖에 없다. 과거 한국에서 주민등록증에 각종 개인정보를 탑재할 수 있도록 전자카드화라는 시도가 잠시 추진되었지만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일본의 마이나 카드에는 IC칩이 탑재되어 있다. IC칩에는 카드에 기재된 정보(이름, 주소, 생년월일, 성별, 개인번호, 본인 사진 등)와 본인인증을 위한 전자증명서만 들어가 있고, 자신이 설정한 비밀번호를 일정 횟수 이상 틀렸을 경우 카드는 무효화되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또한 마이나 카드의 정보를 스마트폰에 담아 활용하는 서비스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이나 카드의 보급과 아울러 그것을 활용하는 서비스도 다양하게 확대 중이다.
그런 와중에 일본에서는 지난 5월 26일, 마이넘버 제도와 관련된 정부 부처 장관 3명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이넘버를 둘러싼 잇따른 실수들 때문인데, 마이나 포인트가 엉뚱한 사람에게 부여된 사례가 최소 113건, 마이나 카드로 편의점에서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경우 다른 사람의 주민표나 인감증명서가 발급되는 시스템 사고가 14건 발생했다. 또한 마이나 보험증에 다른 개인의 신상정보가 연결되는 사고가 무려 7312건 있었고, 그 결과 의료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열람된 경우가 최소 5건 있었다. 마이넘버에 다른 사람의 은행계좌가 묶여버린 사례도 밝혀진 것만 20건이라고 한다.
정부가 마이넘버 제도의 편리함을 노래하며 급하게 보급시키려는 마이나 카드를 둘러싸고 이미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마이나 카드의 담당 부처인 디지털청은 2021년 일본 사회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기 위해 출범한 새로운 정부 부처다. 하지만 출범 초부터 개인 메일주소의 유출 등, 일본사회의 디지털화 지연을 상징하는 듯한 실수들이 잇따라 불거져 문제가 됐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서둘러 마이나 카드를 보급시키려고 하는 데는 뒤떨어진 디지털화를 만회해 캐시리스 사회를 실현함으로써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또한, 누락 없이 효율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려는 정부의 사정도 지적된다. 주민 서비스의 편리함과 효율성보다 행정처리와 주민 관리의 효율성 추구라는 정부 측의 편의만이 우선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IT 선진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여러가지 차이를 느끼면서도, 필자가 일본을 떠났던 20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디지털화가 진행된 지금의 일본 사회 변모를 보면서 놀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디지털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시대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도와 질의 차이는 있어도 그런 디지털화에 얼마나 어떤 식으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시행착오와 논란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