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이 대만 정가를 덮쳤다. 특히 평소 여성 인권을 강조해왔던 민진당은 내부적으로 미투 고발이 이어지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미투 운동이 뜻밖의 정치 폭풍우가 됐다고 영국 BBC 중문판이 보도했다.
하루새 15건···줄줄이 이어지는 민진당 '미투' 고발
지난 5월 31일 민진당 당원의 성추행 고발이 신호탄이었다. 전 민진당 당원인 천씨가 이날 페이스북에 “지난해 당내에서 성희롱 당한 사실을 민진당 여성부(성평등부로 변경) 주임에게 신고했으나, 오히려 여성 인권운동가 출신의 주임으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2차 피해를 입다"고 폭로한 것. 그는 민진당이 개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고 토로했다.
천씨의 고발 이후 민진당내 다른 여성 당원들의 미투 고발이 이어졌다. 민진당 청년부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당원도 동료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청년부 주임에게 보고했으나, 오히려 업무에서 배제되고 심지어 가해자에게 사과하라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따돌림을 당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겨 결국 그만뒀다고 토로했다.
두 여성당원의 고발로 대만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평소 여성인권을 강조해 온 민진당 지도부가 성희롱 문제에 소홀히 대처했다는 사실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에도 민진당 내부 고발은 잇달았다. 3일 하루에만 15건의 미투 고발이 이어졌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보도했다. 5일에도 대만의 한 여성 감독이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진당 소속의 천쥐 전 가오슝시장 비서실장이었던 민진당 전 중앙집행위원 홍즈쿤으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고발해 논란이 일었다.
차이잉원 총통의 민간 지지단체 '샤오잉의 친구회(小英之友會)' 내부에서도 미투 운동이 일었다. 5일 이 단체에서 근무했던 한 여직원이 옌즈파 현 대만총통부 자문위원(資政)으로부터 과거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한 것. 옌 위원은 즉각 해당 여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결백함을 증명하겠다고 반박했으나, 이튿날 돌연 소송을 취하하고 자문위원직에서 물러났다.
이번 민진당내 성추행 사건에 대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직접 사과하고, 당내 관련자·책임자도 줄줄이 사임했다. 민진당 차기 대선 후보인 라이칭더 주석도 수 차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성폭력 신고 접수 창구 개설, 성희롱 사건에 무관용 원칙 대응, 당규 수정 등 성희롱 재발을 막기 위한 개혁안도 약속했다.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 판도에 미칠 영향은
민진당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최근엔 야당인 국민당은 물론 학계·문화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심지어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 운동 주역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왕단에게 과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증언도 나왔다. 왕단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성추행 미투는 약 7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 선거에 예상치 못한 정치 폭풍우가 된 모습이다. 민진당·국민당 가릴 것 없이 미투 운동이 확산하곤 있지만, 직격탄을 입은 것은 민진당이다. 민진당은 그간 여성 참정권, 혼인평등법 등 남녀평등과 여성 인권 보호를 핵심 가치로 여기고 강조해왔기 때문.
특히 대만 사회가 가장 분개한 것은 성추행 사건 발생 후 민진당 지도부가 강경 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감추기에 급급하며 소홀하게 대처했다는 사실이다.
유잉룽 대만민의기금회 회장은 싱가포르 연합조보를 통해 "민진당이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청년, 여성, 고학력, 중산층 유권자의 표심을 대거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대선까지 아직 반년 이상이 남은 만큼, 이번 사태가 총통 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시보는 최근 사설에서 "현재로선 민진당 표심이 충격을 입은 것 같다"면서도 지난 몇년간 발생한 미투 운동의 추이를 보면 처음 몇몇 유명인들이 이슈가 돼 '낙마'하고 난 후로는 차츰 이슈가 가라앉고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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