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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의 주문에 금융업권이 '울며 겨자먹기'로 충당금을 쌓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선 건전성을 위한 충당금 쌓기가 과도해 전체 금융권의 투자능력까지 저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감독원의 ‘2023년 3월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은행의 대손충당금 잔액은 24조원이다. 전년 동기(19조6000억원)보다 약 4조4000억원 늘었다.
대손충당금은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쌓아 놓는 돈이다.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순이익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묶여있는 돈으로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은행이 쌓은 대손충당금은 지난해 1분기부터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6월말엔 21조1000억원, 9월말엔 2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고금리로 인한 연체율 상승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대비하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은행을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4대 금융지주는 전년 같은기간(7199억원)에 비해 2배가 넘는 1조7338억원을 충당금으로 적립했다.
카드사와 저축은행으로 눈을 돌려도 충당금 증가세는 확연하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전업 카드사 7곳(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카드)의 대손충당금 총액은 4조494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3조8954억원) 대비 15.38% 증가한 수준이다. 올 1분기 저축은행이 쌓아둔 충당금 잔액은 5조711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조1731억원(26%) 증가했다.
문제는 이렇게 과도하게 쌓은 충당금이 각 업권의 영업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SBI·OK·한국투자·웰컴·페퍼 등 상위 5개 저축은행의 순이익이다. 이들의 순이익 합계는 3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11억원)보다 78% 줄었다. 충당금을 늘렸기 때문에 순이익이 줄었다.
충당금은 벌어들인 수익을 묶어두는 것과 같아서 금융산업이 미래에 투자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도한 충당금 적립으로 은행의 당기순이익을 축소시키면 신사업 진출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고, 배당금 등 주주환원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의 주문에 따라 대손충당금 전입액의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말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고금리 우려를 감안해 부실 확대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며 "충분한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지속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이 계속해서 충당금, 대손준비금을 높이라는 취지로 압박하고 있다“며 지나친 충당금 적립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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