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현행 단일 최저임금을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는 지난 25년 동안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최저임금법 제4조 “사업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고 있다. 노동계는 이 차등화 시도를 결국 최저임금을 낮추려는 꼼수로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차등지급을 둘러싸고 이미 작년에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정부는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최저임금 차등지급을 면밀한 사전준비 없이 추진하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쳐 주저하더니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밀어붙일 기세이다.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은 이미 널리 확산되어 있는 임금 격차와 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수도권과 지역, 청년과 노인, 도시와 농촌,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에서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이 최근 발표한 일자리 행정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기업 노동자의 평균 세전 월 소득은 563만원으로 중소기업 노동자 266만원의 약 2.1배에 달했다. 이를 연령별로 보자면, 20대 초반(20~24세) 1.4배, 20대 후반(25~29세) 1.6배에서 시작해서 격차는 점점 커지더니 50대 초반의 2.5배로 절정에 이르렀다가 이후 다소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금액으로 본다면, 대기업의 30대 초반 노동자 평균 월급은 476만원인 반면에 같은 연령대 중소기업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267만원으로 209만원의 격차를 보였다. 이 격차는 50대 초반에 이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월급이 각각 760만원, 299만원이 되면서 461만원까지 2.5배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임금불평등의 심화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져 경제주체로서 젊은층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가 20대 38만6000명, 30대 27만4000명, 합쳐서 66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쉬었음’이란 일할 능력이 있지만 병원 치료,육아, 가사 등 구체적인 이유 없이 막연히 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2030세대의 ‘쉬었음’ 인구는 1년 전보다 각각 3만8000명, 1만7000명 증가했다. 통계청은 “쉬었다고 해서 취업을 포기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은 아니다”는 궁색한 해설을 덧붙였다. 통계청의 해석대로 “쉬었음” 인구는 ‘취업 포기’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구직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서 취업을 포기하면 취업능력도 점차 낙후되어 노동시장에 재진입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구직을 중단하거나 취업을 포기한 청년이 증가하는데 최저임금제가 흔들리면 청년층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더욱 줄어 청년층의 구직활동은 더욱 침체될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란과 거의 동시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육아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 또는 한국인 여성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활용하면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순한 착각을 불어넣을 수 있다. 다문화가정에서 나타나는 한국인의 차별의식이 동남아인들을 상대로 더욱 빈번하게 표출될 우려도 있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국인 가사도우미제도의 성과를 기다리지 않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려는 것은 저임금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임금차별이 ‘G8’국가에게 적절한지부터 자문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보다 높은 임금을 목적으로 가사노동 현장을 이탈할 경우 한국 노동시장에서 암시장만 키우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저출산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제도가 성공하려면 그들에게는 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아니라 한국의 여성노동자들과 대등한 처우와 지위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면서 정착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선진국스러운 외국인 노동자정책이고 인구감소대책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바라보는 편협하고 편향된 시각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위윈회 9명의 공익위원 중 4명의 교수가 모두 경영학 전공자라는 사실이 최저임금제의 의의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최저임금은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 제도이면서 동시에 헌법에 기초하는 제도이다. 임금은 기업에게는 비용이지만 노동시장에서는 가격이고 재화와 서비스시장에서는 소득이며 국민경제에서는 민간소비를 구성한다.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가지는 “근로의 권리”의 연장선 상에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제32조 ①항)고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것은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적정임금”을 달성하기에는 노동이 충분한 협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최저임금법 제1조에 규정된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규정 역시 최저임금제가 가지는 다층적 의미를 선언한 것으로 읽힌다.
경영계가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차등화를 요구하는 것은 한국적 본말전도 현상이다. 기업이 살기 위해서 사람이 삶의 일부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모든 기업이 지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최저치이다.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은 오히려 기업의 이러한 노력에 족쇄를 채우고 기업의 혁신의지를 꺾는 반기업적 행태가 될 수 있다. 기업에게 적절한 자극은 혁신 의욕을 부추기는 동태적으로 긍정적인 신호이다. 최저임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업을 보호·육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결국 최저임금제는 일차적으로는 살아 있는 노동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이지만 동태적으로는 이윤 동기에 기반하는 기업의 혁신을 자극하여 지불능력을 강화하는 목적도 가진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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