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싱하이밍 논란과 우리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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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6-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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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저에서 회동했을 때 현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해를 15분 동안 발표하였다. 다음날 외교부는 이 발언을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면서 싱 대사를 초치하였다. 대통령실도 싱 대사의 처신이 상호존중과 우호증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중국 정부에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였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싱 대사를 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였다. 중국과 교류 필요성을 강조하는 야당도 싱 대사의 발언이 이 대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싱 대사의 발언이 여론의 역풍에 직면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발언의 형식이 강대국의 외교사절이 약소국의 정치지도자에게 훈계― 더 나아가서는 위협 ―하는 모양새에 있다. 싱 대사가 원고를 읽었기 때문에 이 대표는 응답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또한 베팅이란 용어의 선택도 적절하지 않았다. 이 말은 마치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무모한 도박으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들리게 했다.
발언 전체를 읽어 보면, 그 취지가 한·중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싱 대사로서는 형식적 문제로 인해 이런 의도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을 것이다. 이번 논란을 관계 개선의 계기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 모두 발언 내용을 차분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귀결되어 양국관계의 걸림돌로 오래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싱 대사의 발언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인식이다. 싱 대사는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인식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지난 30년 동안 떠돌던 중국 붕괴론이 실패했듯이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에게 질 것이라는 예측도 틀렸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에 대한 반박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세계질서를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체제로 분석하는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는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미·중 패권 대결 최악의 시간이 온다>에서 중국경제 쇠퇴를 예상하였다. 중국의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노동 생산성이 하락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무역전쟁 이후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로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디커플링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연평균 9% 이상의 고속 성장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왔다. 2010년대 초반 도입된 신창타이(新常态) 정책은 인구 감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창신(创新)을 강조하였다. 그 이후에 도입된 중국제조 2025와 쌍순환 전략도 첨단 과학기술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강력한 봉쇄정책으로 성장률이 급속히 둔화되면서, 피크 차이나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력 격차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전망이 존재한다. 작년 12월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으로 인해 2035년에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같은 달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와 정반대되는 전망을 공개하였다. 중국이 2030년대 중반 미국을 추월하여 2075년까지 격차를 벌린다는 것이다.
어떤 전망이 더 정확할 것인가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대 후반까지는 중국이 미국보다 더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 기여도에서 중국(34.9%)이 미국을 포함한 서반구(13.7%)보다 거의 세 배 더 크다. 향후 5년간에도 중국(22.6%)이 미국(11.3%)보다 두 배 더 기여할 것이다. 이렇게 중국이 미국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게 되면, 중국과 미국의 격차는 줄어들게 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쟁점은 대중 무역적자라고 할 수 있다. 싱 대사는 탈중국화가 글로벌 경기 하락 및 반도체 경기 침체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중국을 탈출하고 있다는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투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 투자액은 2017년 32억 달러에서 2022년 65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으나 신규법인 수는 같은 기간 538개에서 194개로 축소되었다. 이런 결과는 건당 투자 규모가 증가하는 투자 대형화로 설명될 수 있다.
싱 대사가 언급하지 않은 중국의 산업고도화가 훨씬 심각한 원인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첨단 제품의 국산화를 꾸준히 추진하였다.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2010년대 50% 내외였던 대중 수출에서 가공무역의 비중이 2023년 30%대로 감소하였다. 또한 디스플레이, 2차전지, 스마트폰, 전기차, 정보통신기술 제품 등에서 중국기업의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한·중 무역구조가 상호보완에서 경합으로 변모하면서, 우리 기업의 대중 수출이 점점 어려워진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경기와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더라도 예전과 같은 대규모 대중 무역흑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산업경쟁력 강화로 미·중 격차가 줄고 한·중 격차가 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을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일축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도외시하고 상호존중 부족이라는 형식적인 문제만 계속 거론한다면, 한·중 간 인식의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설령 중국이 먼저 양보해서 형식적으로 지금보다 더 동등한 관계로 대접해준다고 하더라도, 경제력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실질적 관계의 비대칭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중국과 관계를 근본적으로 대등하게 재설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성장률과 산업경쟁력 강화이다. 지난 4월 IMF는 올해 우리나라는 1.5%, 중국은 5.2% 각각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렇게 성장률 격차가 지속되면, 비대칭성의 해소는 더 요원해질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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