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피의자 신상공개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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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23-06-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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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교수]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계기로 피의자 신상공개를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여성 대상 강력범죄에 대한 신상공개 확대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도대체 왜 국민들은 피의자 신상공개 확대를 원하고 있으며, 윤 대통령은 이를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일까?
국민들이 피의자 신상공개 확대를 원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범죄혐의로 인해 체포된 피의자는 당연히 범인이라고 쉽게 생각하며,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 명시한 무죄추정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을 때까지 범인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열 사람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극히 예외적으로만 피의자 신상공개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전제를 갖고 출발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신상공개를 통해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응보적 정의감에 따라 죄를 지은 범인의 신상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피해자의 편에서 범인을 공격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 대해 유튜버가 사적으로 신상을 공개한 것에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셋째, 피의자의 가족, 친지, 소속된 단체나 회사 등에 대해 감내하기 어려운 불이익이 미친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피의자가 진범이라 할지라도 그 가족이나 친지, 회사동료 등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닌데, 이 부분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현대판 연좌제라는 말까지 나올까.
지금까지 신상공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제1항에 근거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는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 중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신상공개의 대상을 확대할 경우에는 자칫 잘못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커지며, 신상공개 대상 중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면 여론은 신상공개 반대론에 힘을 싣게 될 수 있다.
하물며 사적으로 신상공개를 하는 일이 빈번해질 경우에는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려 엄청난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사적인 신상공개는 개인정보보호법 및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위배되는 불법일 뿐만 아니라, 범죄로서 처벌될 수 있는 행위다.
 
이와 더불어 강조될 점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항상 비례에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은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에 따라서 형량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중대한 범죄에 대해 가벼운 형벌이, 경미한 범죄에 대해 무거운 형벌이 가해진다면 이를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범죄자에 대한 유죄 여부의 판단뿐만 아니라 범죄의 경중에 상응하는 형벌의 경중도 중요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양형위원회를 두어 양형기준표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단지 범죄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여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상공개라는 추가적인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신상공개의 효과를 강조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감옥에 가는 것 이상으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이 힘든 일이고, 그로 인해 범죄예방효과가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범죄예방효과를 위해 비례성을 무시한 채 형량을 늘리는 것이 정의롭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피의자 신상공개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무시하고 피의자 신상공개를 확대하는 것도 정의는 아니다. 응보적 정의가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발장처럼 빵을 훔친 것으로 수십년 감옥에 가두는 것이 정의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피의자 신상공개는 앞으로도 계속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는 것이 옳다.
현행법상 피의자 신상공개의 요건으로 ① 특정강력범죄(살인, 인신매매, 강도, 강간 등) 중에서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 또는 성폭력범죄에 해당하고 ②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③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해야 하며 ④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엄격한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충돌할 위험성 때문이기도 하고, 피의자 신상공개의 부작용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엄격한 요건이 모두 갖추어진 경우에는 머그샷(체포된 범인의 사진) 공개를 포함하여 피의자의 신상을 정확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의자 신상공개의 요건을 갖췄다는 말은 추가범행의 방지 등 중대한 공익을 위해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오래된 증명사진 등으로 인해 신상공개의 효과가 미미하다면, 굳이 신상공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상공개 요건 중에서 가장 많이 논란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다. 공인의 범죄 등 중요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사건인지에 대한 판단에서 각 시⋅도 경찰청별로 설치된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엇갈리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최근 정유정 사건의 신상공개와 얼마 전의 제주 유명음식점 살인사건의 비공개 사이에 어떤 명확한 차이가 있는지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자치경찰제의 시행으로 인하여 신상공개심의위원회도 자치경찰 단위로 각기 별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의 신상공개 사건이 60여 건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자율적으로 통합하여 전국의 모든 신상공개 사건을 하나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통일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 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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