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지켜온 통일부의 기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를 중단하고,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면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통일부에 대해 아주 이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통일부의 기존 업무 관련 경험과 식견이 없거나 부족한 인사를 기용한 것이 그것이다. 과거에는 장관이 외부인사로 기용되면, 차관은 으레 통일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인사가 맡았다. 통일부 업무에 정통한 차관이 장관을 보좌하는 것이 업무의 연속성 면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장관에 임용된 김영호 후보자는 평소 ‘북한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며, 우리 스스로 핵보유국으로서의 힘을 가져야 함’을 강조해온 사람이다. 대북 인식 면에서 윤 대통령과 궤를 같이한다. 정통외교관 출신의 통일부 차관은 물론, 대통령실 통일비서관마저 외부인사로 채워졌으니 향후 대북 정책이나 남북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남북관계 개선에 주목표를 둔 통일부가 그 기능과 구조면에서 형해화(形骸化)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통일부가 담당했던 남북회담이나 교류협력 관련 업무는 이제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다가는 남북간 출입관리를 비롯, 이산가족과 납북자 문제도 없어질 것이 뻔하다. 대북정책을 총괄·조정하고 중장기 통일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는 것도 유명무실하지 않을까? 그 대신 현 정부가 전력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북한 인권 실태를 홍보하거나, 그런 방면의 북한 정보 수집과 통일교육이 전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뿐만 아니다. 통일부 산하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과 남북협력기금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도 예산과 인력 축소 등 대수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것이 없어지고 사라질 위기다.
통일부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적대적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한마디로 “무서운 증오심”이다. 그 외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의 역할 변화를 요구하면서 우리 헌법에 명시된 통일을 거론했다.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른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임을 지시했다.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은 헌법 제4조가 명시하고 있는 통일방안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은 통일은 따지고 보면 북한이 없어지거나 없어지도록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당위적인 것이지만 북한 정권과 체제가 사라져야만 이룰 수 있는 통일이다. 어떻게 하면 북한 정권과 체제가 사라질 수 있는가?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거나, 붕괴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지난 역대 정부에서도 헌법에 명시된 그런 형태의 통일을 추구해 온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 방법이다. 남북한을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평화통일로 가져가게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단번에 이루어질 수도 없다. 설혹 북한을 극도로 압박해 붕괴하도록 만들어 이루는 통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남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대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북한이 붕괴되어 남한 법 체제로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당장 북한 주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북한 주민이 모두 우리의 ‘기초수급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생계와 주거, 의료 및 교육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이 붕괴되어 남한의 법체제로 편입되는 순간부터 가히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체제 속에 살아온 북한 주민들의 인식이 변화해 남한 사회체제에 동화할 때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이질감에 따르는 혼란과 갈등은 엄청날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한 지 30년을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동질성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통일은 북한을 압박해서 스스로 붕괴되어 이루어지는 통일에 가깝다.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북한을 압박하고 선제타격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 제5조에도 정면 배치되는 행위다. 통일부를 북한 압박 부서로 바꾸겠다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위험한 발상이다. 더 나아가 남북한 대화와 교류협력, 인도지원에 관한 정책 수립과 같은 통일부 고유의 역할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통일부 기능을 형해화하는 것은 정부조직법을 어기는 탈법적 발상이기도 하다. 북한은 남한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에 있어야 한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우리는 남북관계가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임을 명시했다. 이를 지켜내야 한다. 먼저 통일과 유사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한 주민이 자동차나 기차로라도 상대지역을 편히 오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국제적인 환경과 상황 변화, 남북한의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북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넘어 북한이 없어지는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에 대한 압도적 우월을 통한 북한의 굴복과 그런 굴복에 바탕한 통일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먼저 통일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 내는 ’사실상의 통일‘이 평화를 정착시키고, 바람직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전략이다. 평화는 교류협력의 지속적 상태를 말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로 남한을 위협하고 있고, 인권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선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대화와 함께 복합적 외교로 대응해야 한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우발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와 교류의 창구는 더욱 필요하다. 윤 정부는 지금까지 통일을 지향하며 남북관계를 긍지와 사명을 가지고 근무해온 수많은 통일부 공무원들을 허탈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침체되고 적대적인 남북관계에서 설립 당시 표방했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속에 있을 것이다. 정부가 필요해서 만든 기관의 존재를 느닷없이 통째로 흔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생업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을 허탈하게 한다. 하루아침에 거취를 불안하게 만든다. 재정적 문제도 문제지만 엄청난 심적 타격을 받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이 북한에 대한 증오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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