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미국이 중국·홍콩을 밀어내고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흑자국으로 등극했다. 연간으로 대미 흑자 규모가 전체 1위였던 건 지난 2002년이 마지막이었다.
대미 수출액도 중국에 간발의 차로 뒤진 2위였다. 다만 미국과의 교역이 확대된 결과가 아니라 대중 수출 부진과 무역적자 심화에 따른 반사 효과에 가깝다.
핵심 무역 파트너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교체하려는 정부의 피벗(Pivot·정책 전환) 전략이 자칫 우리 경제의 취약성만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 대미 수출액은 550억 달러, 무역수지는 183억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수출액은 중국에 이은 2위, 무역흑자는 교역 대상국 중 1위다.
98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거둔 2002년 이후 미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흑자국이었던 적은 없었다.
흑자가 늘어난 배경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올 상반기 미국으로의 수출은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미 수입액은 355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0.2% 줄었다. 수출은 예년과 비슷한데 수입이 줄어 만들어진 흑자라는 얘기다.
실제 대미 수출액은 2021년 959억 달러, 2022년 1097억 달러에 올해도 1000억 달러 수준이 예상되는 등 큰 변동이 없다. 같은 기간 무역흑자 규모도 227억 달러(2021년), 279억 달러(2022년) 등으로 일정한 흐름을 보였다.
그런데도 우리 수출과 무역흑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진 건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수출이 급감하며 교역 순위에 변동이 생긴 탓이다.
대중 수출 규모는 2018년 1600억 달러까지 치솟은 뒤 2019~2020년 130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가 2021년과 2022년 각각 1629억 달러, 1557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는 578억 달러(-26.7%)에 그쳐 연말로 가도 1000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상반기에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적자국이 됐다. 2013년 사상 최대인 628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뒤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흑자 규모가 121억 달러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는 9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중이라 수교 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25.3%에서 지난 5월에는 19.6%로 낮아졌다.
2021년만 하더라도 1위 무역 흑자국이었던 홍콩 역시 대중 수출 부진의 영향으로 미국과 베트남에 이은 흑자 규모 3위로 밀려났다. 홍콩은 자체 시장 규모가 작지만 한·중 간 중계 무역이 활발했는데 대중 교역이 부진해지며 무역수지도 악화했다.
결국 대중 수출은 줄고 대미 수출은 반등이 없는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미·중 갈등 심화에 한·중 관계까지 어색해지면서 미국이 중국을 대체할 무역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특히 최근 국내 기업의 미국 내 공장 신설이 잇따르면서 미국으로의 수출을 큰 폭으로 확대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은 "우리나라가 미국을 포함해 호주, 아세안으로 전방위적 투자를 하고 있어 대중 무역에서의 흑자 감소분이 어느 정도 메워질 수는 있다"면서도 "교역 구조가 일부 바뀔 수 있지만 중국 시장 자체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변화된 무역 구조에 맞춰 수출 품목과 지역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연 팀장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품목을 다양화하는 것은 경제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당장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경제적 효과를 면밀히 따져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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