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치원을 2년째 다니고 있는 6세 아이입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미디어를 이용해보려고 하는데, 조언이 필요합니다. 언제쯤 영어 말문이 트일까요."
회원 수 7만명에 달하는 영어 유치원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 '영유나라(영어유치원 나라)'에 올라온 글이다. 5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모씨(32세·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우리 아이를 방치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며 "일유(일반유치원)를 다니고 있는데, 영어학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10명 중 6명 이상은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사교육을 시켰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내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사교육 이권 카르텔'에 대한 단속에 주력하고 있지만 영유아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개 과목 이상 학원 다니는 만 5세 아이 '절반'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지난 5월 16일부터 14일간 전국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사교육을 시작했다고 답한 비율이 65.6%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시키는 과목별로 보면 국어가 74.3%로 가장 높았다. 이어 △수학 70.6% △영어 61.3% △예체능 56.2% 순으로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 5세 자녀에게 듣게 하는 사교육 연간 과목 수는 3개 이상이 49.2%로 가장 많았다. 이어 3개 이상 과목을 듣게 하는 경우는 24.6%였다. 5개 이상 사교육을 받았다는 자녀도 11.1%로 집계됐다.
지역별 차이도 컸다.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선행학습 시키는 비율이 높았다. 국어는 서울이 83.9%, 수도권은 76.4%, 비수도권은 44.6%로 초등학교 입학 전 사교육을 시켰다. 영어와 수학, 예체능을 선행학습 시키는 비율도 비수도권 학생에 비해 1.6~1.7배 더 높았다.
사교육 유형은 '방문 학습지와 스마트기기 활용 학습지 등을 활용'한 경우가 35.8%로 가장 높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방과 후 특별활동을 받은 건 31.7%, 사설학원 등 시간제 교육기관이 12.8%로 나타났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사교육비로 지출한 비용이 연간 300만원 이상이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0%에 이르렀다. 자녀의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생활비를 줄인 적도 있다고 답한 비율은 43.9%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에 대해선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부모들이 '취학 전 자녀의 재능이나 소질을 계발시켜주기 위해서 사교육을 시켰다'고 답했다. 응답자 23.5%는 '다른 아이들이 받기 때문에 안 받으면 불안해서 사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사교육 축소한다 했지만...'초등 선행학습' 조장 우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발표한 사교육 대책은 오히려 초등 준비 선행교육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가 지난달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입학을 대비한 사교육 수요를 고려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을 연계하는 '이음학기'를 확대 운영하고 영어와 예체능 등 방과후 과정을 늘리기로 했다. 영유아 사교육 수요를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 공교육 체계에 흡수하겠다는 취지로 발표한 대책이 학부모들에겐 '초등학교 입학 전 선행학습은 필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정부가 영어 방과후 교실을 확대하면, 국가가 어릴 때부터 영어를 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면서 "만 5세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와 연계한 이음학기를 운영하는 것도 결국 초등학교 선행학습을 하라는 신호가 된다"고 분석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