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자금 경색 위기 때마다 수천억 원 규모로 유동성을 투입한 시중은행이 최근 불거진 새마을금고 사태에서도 최대 2조원가량 유동성을 투입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권 연체율도 상승해 충당금으로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동성 지원을 위해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자금이 투입돼 은행에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채권시장 과열로 인한 자금 경색이 발생한 이후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은행권은 여러 차례에 걸쳐 수천억 원 규모에 달하는 유동성을 투입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과열되자 금융당국은 한국전력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채권 발행 자제를 권고하고 은행권에 대출을 독려한 바 있다.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 발행을 자제하라고 조치했지만 공공기관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시중은행이 대출로 해결하라는 노림수였다.
당시 한전에만 하나은행에서 6000억원, 우리은행에서 9000억원 등 총 1조5000억원에 이르는 대출이 집행됐다. 올해 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부실 우려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도 국내 주요 금융그룹은 은행을 앞세워 5000억원 규모 유동성을 앞다퉈 지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마을금고에 6조원이 투입되자 금융권에서는 리스크가 은행권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기간에 수천억 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다 보면 은행권에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만에 하나 새마을금고에 추가 유동성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은행 외에는 자금을 투입할 주체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했을 것”이라며 “은행이 임시변통하는 금액이므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보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새마을금고 사태가 한국은행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발행에도 영향을 줬을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종합금융·상호금융기관은 지난 3~7일에만 채권을 3조214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새마을금고는 종합금융·상호금융기관으로 분류된다. 시장에선 새마을금고가 자금 이탈에 대응하기 위해 빠른 거래가 가능한 금융채·통안채를 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한은 통안채 발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은에 따르면 전날인 10일 통안채 경쟁입찰 결과 낙찰액이 발행 예정액(1조4000억원) 대비 절반인 7000억원에 그쳤다. 지난 3일과 5일 발행 예정액 이상 낙찰된 것을 고려하면 수요가 뚝 떨어진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시장에 통안채가 많이 풀리고 매수심리가 죽었기 때문에 한은 발행 물량이 소화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시중은행이 새마을금고가 보유한 국채·통안채를 담보로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통안채가 시장에 더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조절하는 통화정책 수단인 통안채 발행을 계획대로 이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당시 통안채 물량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시스템 우려가 커져 수요가 없어지면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시중은행의 자금 수혈로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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