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염으로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온열질환으로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영진에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노동계에서는 근로자 사망 이후에도 산업현장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중처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기상여건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경영에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경영상 부담이 가중된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13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폭염으로 체감온도가 30도를 웃돌면서 근로자가 산업현장에서 업무 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 소속 40대 근로자가 운행을 마친 열차에서 냉방기를 청소하다 숨진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달 19일에는 코스트코에서 일하던 20대 근로자가 카트·주차관리 업무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온열질환도 중처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처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중대재해로 규정한다. 중대재해에 폭염에 의한 온열질환도 포함할 수 있다는 게 노동계 설명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6~2021년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재는 총 182명이 발생, 이 중 29명이 사망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코스트코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중처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A씨는 지난달 19일 오후 7시경 매장 주차장과 매장 사이 연결계단에서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오후 7시 36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끝내 숨졌다. 사망원인은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로 발생한 폐색전증이다. 사망 당일 A씨는 동료에게 가슴이 답답해 조퇴하고 싶어도 업무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 "근로자 사망해도 안전수칙 안 지켜"
노동계는 온열질환이 중처법 처벌 대상임에도 코스트코 등 산업현장에서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고용부가 코스트코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경영진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월 중처법 시행 이후 아직까지 검찰이 폭염 등 기상여건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해 경영책임자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례는 없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부가 코스트코 근로자 사망사고에 중처법을 적용해 코스트코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망사고 이후에도 코스트코의 사후대책이 미흡하다는 주장이다.
김성익 마트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부족한 인력과 고강도 노동, 열악한 휴게시설 등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사후대책은 임시방편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스트코는 고강도 노동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장에서 노동자들을 데리고 와 일을 시키고 있다"며 "타 매장 인력 부족 현상을 발생시켜 연쇄적인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망 당시 코스트코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시행규칙은 사업장이 휴게시설에 물품 보관 등 휴게시설 목적 외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고인이 근무했던 부서 휴게실 공간 일부에는 상품 적치가 돼 있었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고인은 사망 당시 회사 취업규칙에도 6대까지만 끌라고 돼 있는 카트를 20대씩 옮겼다"고 지적했다.
경영계 "폭염 시 사망사고 개인적 요인과 연관 높아"
그러나 경영계는 중처법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폭넓어 경영상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폭염 등 기상여건으로 인한 사망사고에도 중처법을 적용해 경영진을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일률적으로 중처법을 적용해 경영진을 처벌하면 경영활동이 위축된다"며 "경영자들의 볼멘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부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중처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폭염 상황에서의 사망사고는 개인의 건강관리와 연관이 있을 수 있는데 사업주 조치 문제로 사망했다고 단정하면 회사 입장에서 경영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대원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과로에 의한 심혈관계 질환 등 질병에 대해 어디까지 회사가 안전보호 조치를 해줘야 하는지 논란이 있다"며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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