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가 기업에 기부한 기금에 부과된 법인세 과세를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기부금이 실질적으로 회사 순자산을 늘린 수익이나 익금(회사 순자산을 증가시킨 거래로 생긴 수익)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SK브로드밴드가 동수원세무서와 서울지방국세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 처분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17년 태광그룹 계열사였던 티브로드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중소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운영 및 지원을 위한 공동 협력’ 양해각서를 통해 기금 100억원을 기부받았다. 티브로드는 이 중 약 38억원은 중소 PP 지원에 사용했고 이후 2019년 이 전 회장과 합의해 해당 양해각서를 해지한 후 미사용 기금 62억원을 이 전 회장에게 반환했다.
그런데 이듬해 국세청은 법인세 통합 세무조사를 통해 해당 기부금 100억원과 그 이자 수입을 티브로드 익금이라고 판단했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법인세를 약 25억원 부과하고 이 전 회장에게 반환한 자금 62억원 역시 주주에게 배당한 것으로 봐 소득금액 변동 통지도 진행했다.
티브로드를 흡수합병한 SK브로드밴드는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청구가 기각되자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재판에서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는 민법상 위임 혹은 신탁법상 신탁으로 기부금이 티브로드에 귀속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이 전 회장이 해당 기부금을 회사에 단순히 신탁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에 100억원을 ‘신탁’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티브로드가 자기를 위한 용도로 기금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법인세 부과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기금이 티브로드 고유 재산과 별도로 집행·관리됐고 합병을 진행 시에도 회사 가치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법인세 부과를 취소한 근거로 들었다. 이어 반환 경위 등으로 판단할 때 기금이 티브로드에 귀속돼 순자산을 증가시켰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배임죄로 처벌받은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가 입은 피해 변제를 위해 기금을 증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세무당국 주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애리 법무법인 온조 변호사는 “행정법원은 소송에서 법인세 부과를 취소하라는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린 것이어서 과세당국이 항소를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항소하지 않더라도 과세당국은 기초 사실과 동일하면 징수 금액과 행정처분을 변경해 부과할 수 있으므로 과세연도 등을 검토해 법인세와 다른 별도 처분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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