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존이(求同存異), 구동화이(求同化異), 취동화이(聚同化異), 화이부동(和而不同) 등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방면에서 한·중관계가 악화되고 어려울 때마다 양국의 미래 비전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비슷한 의미와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간단히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한·중관계의 미래 발전을 애기할 때 공식적인 멘트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표현이 바로 ‘구동존이’이다. ‘한·중간의 공통점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 두자'라는 뜻이다. '구동존이'는 1955년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이자 외교부장이 아시아-아프리카 국제회의 연설 중 천명한 평화공존 5원칙 중 하나로 처음 사용했고, 그 이후 중국과 체제가 다르거나 마찰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둘째, 구동화이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되 이견이 있는 부분까지 공감대를 확대하자‘라는 뜻으로 2016년 9월 5일 중국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 기간 중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 때 사드 배치를 두고 시진핑 주석이 ’구동존이‘를 말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구동화이‘로 화답한 말로 그 이후 한·중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되었다. 중국의 구동존이는 사드는 반대하지만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는 협력을 강화하자는 의미였고, 우리의 ’구동화이‘는 향후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전략적으로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구동화이는 우리가 한·중관계의 미래를 설명하며 만든 표현으로 2010년 12월 외교안보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출범식 때 당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언급했고, 사드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하며 자주 인용되었다. 셋째, 취동화이는 ’공통점은 지속적으로 취하고 차이점은 바꾸어 나가자' 라는 뜻으로 우리가 애기한 구동화이와 같은 맥락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2009년 왕이 외교부장이 타이완 판공실 주임 시절 양안관계를 애기하며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 그리고 2014년 7월 4일 시 주석의 방한 당시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관계의 미래방향을 ‘취동화이’로 설명하며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넷째 화이부동은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표현으로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바른 뜻은 꺾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면서도 자기중심과 원칙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화이부동’은 ‘구동존이’와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
양국 정부 고위급에서 자주 회자되며 사용된 4가지 표현의 공통된 의미는 결국 한·중간 차이와 다른 점을 상호 인정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92년 한·중수교 이후 31년 동안 양국관계는 협력과 모순, 갈등을 겪으며 발전해 왔고, 사드사태, 동북공정과 문화공정과 같이 한·중간 모순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의도적으로 협력을 강조한 채 양국의 깊은 반목의 골과 아픔을 애써 숨기려고 노력해 온 측면이 강하다. 단골 메뉴처럼 한·중관계를 애기할 때 언급된 4가지 표현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협력하자‘라는 2가지 명제를 깔고 있다. 문제는 2개의 다른 명제가 서로 충돌하다 보니 양국관계는 계속 그럴듯한 정치적 워딩만 내세울 뿐 별로 진전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리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협력하자는 명제인데 앞의 전제조건인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양국간에는 좁혀지지 않는다. 한국의 일부 여론과 중국을 혐오하는 계층은 심지어 중국을 논어 자로편 ’소인, 동이불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오직 이익만을 위해 남과 어울리기는 잘 하지만 진정한 화합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작금의 한·중관계는 상호 신뢰성이 무너지며,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체제나 가치, 이념 등 태생적으로 한·중 양국은 서로 다르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관점과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면 결코 한·중관계 회복의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향후 미·중간 충돌과 대립이 심화되고 한·중간 반목과 불신이 가중될수록 양국간 협력과 교류는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양국관계가 마치 폭풍우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고 힘든 동면의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중국이란 강대국을 옆에 두고 우리가 평생 살아가야 할 운명으로서 우리가 좀 더 현명하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코 대중 굴종외교, 저자세 외교의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면서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하는 혜안과 함께 국익에 기반한 당당한 대중 실용외교를 해야 한다. 나아가 미국 국익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중국이 자멸한다고? 중국은 망하지 않는다. 봉쇄전략으로 절대 중국을 이길 수 없다.’라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면서 미·중갈등이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해 갈등관리를 역설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표현한 것이다. 최근 미국 국무방관, 재정장관 등 고위급 관료의 이어지는 중국 방문과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CEO들의 중국행이 가지는 함의를 이해해야 한다. 좀 더 냉정하게 미·중관계를 살피고 그에 따른 우리의 국익을 챙겨야 한다. 만약 우리 스스로가 반중∙혐중의 논리에 매몰되어 중국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된다면 결코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력하고 명확한 우리의 원칙과 명분을 내걸고 미·중 양국 모두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대담함과 현명함이 필요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가치와 이데로올기 관점에서 접근하면 결국 기업과 국민들만 힘들게 된다. 한국이 세계경제 10위권의 글로벌 중견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중국이라는 세계시장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이라면 무조건 ‘No’가 아니라 ‘know 차이나’가 되어야 한다. 중국은 한·중관계를 비유하며 종종 '내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다‘ 라는 뜻의 ’아중유니, 니중유아(我中有你, 你中有我)' 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한·중관계가 곧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리고 서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 듯하다.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양국간 소통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양국간 정치∙외교 마찰과 충돌이 심화되고, 사고방식과 관점의 차이가 커져 가면서 한·중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양국간 좀 더 긴밀한 소통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하고, 지방정부와 민간 차원의 소통과 교류를 더욱 확대시키는 노력과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박승찬 필자 주요이력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방문학자와 함께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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