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엔화예금 잔액과 증가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예금과 동반 상승한 가운데 그 증가폭이 달러예금을 넘어섰다. 그동안 외화예금 등락폭이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고 하락하는 외화예금에 관심을 가진 수요자들이 달러화 대신 엔화 사들이기에 몰두하면서 보유분이 급증한 것이다. 월 기준 역대급으로 치솟은 엔화예금 영향으로 엔화예금 잔액 역시 사상 최대 규모로 올라섰고 국내 외화예금 잔액은 두 달 연속 증가해 1000억 달러에 육박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거주자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올해 6월 중 외국환은행의 거주자외화예금은 한 달 전보다 30억4000만 달러 늘어난 967억9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거주자외화예금이란 내국인과 국내 기업,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 등이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외화예금을 말한다. 올해 초 1100억 달러에 육박하던 외화예금 규모는 넉 달 연속 하향세를 기록하다 지난 5월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다만 증가폭은 직전월(+54억 달러)보다 둔화됐다.
이번 외화예금 통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주요국 통화별 비중과 증가폭 변화다. 일반적으로 국내 외화예금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외화는 기축통화국인 미국 달러화다. 이번 통계에서도 미 달러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11억5000만 달러 증가한 총 834억4000만 달러로 전체 외화예금 가운데 83.6%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비중은 한 달 전(85%)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었다. 심지어 단순 금액상으로도 달러예금 증가규모(11억5000만 달러)가 엔화예금 증가폭(12억30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엔화예금은 최근 한 달간 잔액과 증가폭 모두 역대 최대치로 치솟았다. 6월 중 엔화예금 잔액은 74억8000만 달러로 한 달 새 12억3000만 달러 급증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월별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을 집계한 지난 2012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전까지 엔화예금 잔액이 역대급 규모에 도달한 것은 올해 1월로, 당시 잔액 규모는 70조1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증가폭 또한 지난 2017년 10월 당시 한 달 새 9억7000만 달러 가량 급증한 것이 가장 큰 증가폭이었으나 이번 발표로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처럼 국내 엔화예금이 급증한 배경에는 수개월째 지속된 엔화 약세 영향이 컸다. 원·엔 재정환율은 4월 말 989.17원에서 5월 말 951.09원까지 떨어지는 등 엔화 약세가 이어지더니 지난달 중순(19일)에는 100엔당 897.49원까지 하락했다. 이는 2015년 6월(100엔당 885.11원) 이후 8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엔화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고 달러화를 기준으로 계산한 재정환율로 산출된다. 엔저 현상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 중인 미국 등 주요국과 달리 홀로 완화정책으로 일관하는 일본 통화정책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금융권 안팎의 공통된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엔화가 오르기 전에 미리 보유해두려는 개인들과 기관들의 수요가 한데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6월 중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엔화 환전액 규모는 원화 기준 4450억원대로 한 달 전(2787억원대)보다 1660억원 이상 늘었고 상품 가입 시 자동으로 엔화로 환전해 예치해주는 엔화예금 상품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주식처럼 쉽게 매매할 수 있는 엔화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대금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엔화예금은 개인 여유자금과 증권사의 투자자예탁금 예치 등으로 월 기준 역대 최대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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