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왼쪽 군사분계선을 끼고 해발 200m 남짓한 고지. 6·25전쟁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후크고지’다. 이곳에서 1952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 휴전협정 전까지 영국 연방군과 미군은 중공군을 상대로 네 차례나 격전을 벌였다. 중공군의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젊은이들은 ‘낯선 나라’ 한국을 위해 피 흘리며 싸웠다. 이들의 희생으로 임진강 이남 지역을 사수할 수 있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함께 지킨 21개국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찾는다. 국가보훈부는 정전 70주년을 계기로 24일부터 29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유엔 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명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한 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유엔 참전용사에게 정부 차원의 예우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제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웅들을 모십니다’다.
이번 방문단에는 후크고지 전투에서 싸운 호주의 로널드 워커(89), 렉스 맥콜(92), 버나드 휴즈(92), 마이클 제프리스옹(90)과 빈센트 커트니(캐나다·89), 피터 마시옹(영국·90)이 포함됐다.
이번에 재방한하는 유엔 참전용사 중 최고령자는 미국의 해럴드 트롬옹(95)이다. 트롬옹은 1950년 전쟁 당시 미 육군 이병으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장진호 전투 등에서 우리 군과 함께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웠고 이후 중령으로 예편했다. 트롬옹과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패트릭 핀(미국·92), 고든 페인옹(영국·92)도 함께 방한한다.
4형제가 함께 6·25전쟁에 참전한 아서 로티옹(캐나다·91)과 그의 아들도 방한한다. 아서 로티 4형제는 6·25전쟁 정전 후 캐나다로 무사히 돌아갔고 다른 형제 3명은 현재 모두 별세했다.
전쟁 중 소중한 인연을 찾는 참전용사도 있다. 윌리엄 버드옹(91·미국)은 부산 캠프에서 매일 자신의 빨래를 해주겠다고 했던 당시 12세 소년 ‘장’(Chang)을 찾고 있다. 에드워드 버커너옹(캐나다·91)은 전쟁 당시 초소 청소를 했던 ‘조족송’(Cho Chock Song)’이라는 소년을 수소문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 경연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자이자 6·25전쟁 참전용사인 콜린 태커리옹(93)은 26~28일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아리랑을 열창한다. 태커리옹은 아리랑 공연에 대해 “영국에서 배를 타고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곳이 부산이었는데 당시 전장에서 부르던 노래가 아리랑이었다”며 “무슨 의미의 노래인지도 모른 채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불러 이제는 한국을 떠올릴 때마다 아리랑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방한단은 25일 판문점 방문을 시작으로 26일 유엔 참전국 감사 만찬에 참석하고 27일 부산 유엔기념공원 방문, 유엔군 참전의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 참석, 28일 전쟁기념관 방문의 공식 일정 후 29일 출국할 예정이다.
보훈부는 22개국 유엔 참전용사와 함께 참전국 정부대표단도 함께 초청했다. 미국, 태국,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캐나다, 필리핀, 뉴질랜드,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튀르키예, 영국 등 14개국 관계자가 입국한다. 나머지 8개국은 주한대사가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다.
정상급인 데임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과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로 미국 버지니아주 보훈 및 병무부 부장관인 한인 2세 제이슨 박 등 화제의 인물도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우리가 힘들 때 손을 건네준 22개 참전국과 참전용사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할 것”이라며 “당시의 국제사회 연대로 이뤄낸 성과와 자유의 중요성을 공유하며, 더욱 굳건한 동맹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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