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곡물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한 가운데 다뉴브강 인근 지역 포격까지 단행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곡물 가격이 최대 15%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흑해곡물협정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충분한 곡물 공급을 받는 보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협상 중단은 가격 상승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곡물 가격이) 어디까지 오를지 아직 모르지만, 10~15% 상승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지난 18일 자로 흑해곡물협정 종료를 선언하면서 세계 곡물 시장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는 선박 보험과 결제 제재로 농산물과 비료 수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협상 종료 구실로 삼았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우크라이나 곡물의 유통을 허용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지만 러시아의 탈퇴를 막지 못했다. 이로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세계 식량의 수급을 담당하던 흑해곡물협정은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연일 이어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도 곡물 시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날 다뉴브강 인근 우크라이나 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다뉴브강은 흑해곡물협정이 종료되면서 흑해를 대신할 대안으로 대두된 곳이다. 러시아가 협정 종료에 이어 다뉴브강 인근까지 공격하자 '자원 무기화'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는 곡물이 세계 시장에 수출될 수 있는 대안 경로를 공격해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짚었다.
러시아의 협정 종료 선언과 폭격은 즉각 곡물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9월물 소맥(연질밀) 선물 가격은 부셸(1부셸=27.2kg)당 7.47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소맥 가격이 부셸당 6달러 이하에서 거래된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르게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대표 수출품인 옥수수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12월물 옥수수 선물 가격도 부셸당 5.5 달러를 넘어섰다. 월초 5달러 이하에서 거래됐지만, 연이은 악재에 폭등한 것이다. JP모건은 우크라이나의 수출이 막히면서 향후 밀과 옥수수 공급이 지난해에 절반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막히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지역의 빈곤국이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에 따르면 흑해곡물협정을 통해 수출된 곡물의 57%가 빈곤국 등 개도국에 전달됐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 1년 동안 흑해 곡물 협정을 통해 에티오피아(26만3000톤), 예멘(15만1000톤), 아프가니스탄(13만톤) 등 중동 아프리카 국가에 72만 5200톤(t)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빈곤국의 식량 위기 가능성이 커지자 유럽은 육로 우회 대책까지 고심하는 상황이다.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전날 27개국 농업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수출물량 거의 전부를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U 연대 회랑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곡물 일부를 흑해 대신 동유럽 EU 회원국의 육로를 통해 수출할 수 있게 하는 경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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