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내년에도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예산당국이 대대적인 '허리띠 졸라매기'를 예고한 상태다. 반면 다른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예산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기획재정부와 마찰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8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오는 9월 1일 국회 제출을 목표로 2024년 예산안 심의를 진행 중이다. 제출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회의 의결 등을 거쳐 12월 1일 최종 확정된다.
이에 따라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재부와 다른 부처 간 줄다리기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건전재정 기조를 공식화한 기재부와 밀어 넣기식 증액 요구에 익숙한 부처 사이에서 증액 폭을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6월 말 각 부처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장들을 소집해 내년 예산안을 다시 작성해 제출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한 달 전인 5월 말 부처별 예산 요구안이 기재부에 전달됐는데 이를 다시 손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발단이었다. 윤 대통령은 6월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며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재부가 각 부처 기조실장에게 예산 요구안 재구조화를 요구한 배경이다. 대통령 의중에 상응하는 예산 구조조정을 진행하라는 취지다. 실제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부처들은 경제 정책 방향이 경기 부양 쪽으로 선회한 데다 수해 복구비 집행, 내년 4월 총선 대비 등 수요를 감안하면 필수예산비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관행처럼 이뤄져 온 8월 추가 예산 밀어 넣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은 팽배하지만 기재부가 자의적으로 결정하도록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기류가 읽힌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도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 재정 자립도는 50.1%에 불과해 재원 중 절반을 정부에서 나눠주는 지방교부세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가 보조가 없으면 제대로 된 지자체 운영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일단 각 부처와 지자체는 예산안 심의에 전력을 쏟고 있다. 한 부처 관계자는 "정부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윤 대통령이 전례 없는 강도로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있어 심의 과정도 예년과 달라진 모습"이라며 "원래 1단계 심의 후 2단계로 넘어가는데 최근에는 1·2단계가 혼재돼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기재부 심의관급 인사가 늦어지면서 대응 전략 수립에도 애를 먹는 상황이다.
8월 중순 미결·쟁점 사업에 대한 심사를 끝으로 예산안 심의가 마무리되면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간다. 이후에는 증액이 쉽지 않아 지금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현재 기재부는 각 부처에서 낸 예산안을 긴축 재정 기조에 맞게 다시 짜오라고 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2주가 예산 확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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