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각 지자체가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민간 아파트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건설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LH ‘철근 누락’ 무량판 아파트 중 상당수가 설계상 오류임에도 시공사가 주범인 것처럼 낙인 찍힌 데다 안전검사와 추후 보강공사 등 비용도 전적으로 건설사 몫이기 때문이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무량판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와 지자체, 안전점검기관은 민간 아파트 무량판 전수조사를 위한 구체적인 실무협의에 돌입했다. 조사 대상인 293개 단지 도면을 확보한 뒤 약 2주간 전문가들이 설계도면을 검토한 후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단지를 추려 현장 조사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현장 조사에서는 철근탐지기, 비파괴검사 장비 등을 적용해 콘트리트 강도, 철근 유무 등을 점검한다.
정부는 주민 재산권 침해 논란을 우려해 가구 내부 손상은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조사 과정에서 페인트, 벽지, 벽 등이 손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문제는 비용 부담 주체다. 건설사들은 정부가 무량판 공법을 장려해 놓고 이제 와서 ‘시공사 낙인 찍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시공사는 안전점검, 보수, 보강공사 등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모자라 가구 내부 파손 복구 비용, 주민 이주 비용 등까지 떠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 점검 결과 문제가 발생하면 민간 아파트에도 LH에 준하는 보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것도 부담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날 "만약 민간 아파트 주거동에도 문제가 있다고 확인돼 주민과 시공사 간 분쟁이 발생하면 국가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국가적으로 보상 계획을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민간 아파트들은 무량판 구조라도 LH와 달리 혼합구조를 적용해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 크게 걱정은 안 한다"면서도 "다만 조사도 하기 전에 마치 이 문제에 대한 원흉이 건설사이고, 무랑판 아파트 전체가 문제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무량판을 적용했다고 밝힌 민간 단지 293곳을 선정한 기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고 비용 부담을 시공사로 특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안내가 없어 현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면서 "주먹구구 조사 방식과 보상 기준으로 오히려 정부가 국민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파트는 준공과 등기가 이뤄지면 소유권이 입주민들로 바뀌는데 안전진단 비용은 이해하더라도 추가 보상공사와 이주비용, 복구비용까지 시공사가 부담하는 게 형평에 맞느냐"면서 "'아니면 말고 식' 정부 대응은 오히려 시공사와 주민 간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이미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해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또 보상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지 등을 두고 앞으로 건설사, 입주민, 설계회사 간데 법정 분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원 장관은 이날 본인 SNS를 통해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가 건설사에 부담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비용을 따질 때가 아니다"면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안전 문제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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