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표류하는 한·중 관계, 돌파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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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입력 2023-08-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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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표류하는 한·중 관계의 경색 국면을 벗어나자는 양국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작년 말 갑작스러운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완화 조치가 초래한 '비자 갈등' 문제와 지난 4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앞선 외신 인터뷰 중 대만 관련 발언 논란, 그리고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베팅' 발언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갈등이 지속되는 중이었다.
일단 양국은 그동안 단절됐던 고위급 교류를 시작했다. 이는 작년 11월, 발리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성사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정상 간 공감대와 고위급 간 전략 소통을 통한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 발전을 도모하자는 합의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양국 외교부장 통화 이후 잠잠했던 고위급 대화는 5월 22일 중국 외교부 아주국장의 방한으로 양국 아주국장 협의가 진행되고, 7월 4일 양국 차관급 대화가 열렸다. 전날인 7월 3일에는 외교부장을 겸직하게 된 왕이(王毅) 정치국원이 한·일·중 3국 협력 국제포럼에 이례적으로 직접 참석해 정부 간 협의체 재활성화를 언급하고, 14일에는 아세안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 장관회담이 열려 본격적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텄다.
한국 정부는 일차적 목표인 국가안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선행적 조치를 확보한 후, 중요 경제파트너로서 북핵 문제 협조 등 지역의 번영과 평화에 일정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대중 관계 재정립에 나서는 모습이다. 다만 현 정부는 국제규범과 규칙에 따라 상호 존중과 호혜· 공동이익을 기반으로 양국 관계를 성숙하게 발전시킨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안정과 평화 및 한국에 대한 직접적 군사 위협인 북핵·미사일 고도화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로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삼각 공조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한미 ‘워싱턴 선언’과 한·미·일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 체제 연내 가동 합의, 한·미 핵 협의 그룹(NCG) 회의 개최 등은 현실화한 고도화한 북핵 위협에 대한 확장억제 구축 차원이다.
그러나 중국의 생각은 다르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되는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공조 확대가 외교·군사·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의 일환이라는 우려를 계속 표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을 추진하며 한·일을 앞장세우고, 한국이 그 일선에 있어 갈등이 초래됐다는 주장을 하지만 한국의 입장은 다르다. 중국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지만, 적어도 한국의 첫째 목표가 중국 견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중국은 미국의 ‘전통적’ 안보 위협인 러시아뿐만 아니라 신흥 위협인 중국에 대한 견제가 나토(NATO)를 통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관계마저 악화하면 중국에 유리할 것이 없어 ‘소통 재개’라는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외교의 원톱인 왕이 정치국원이 보아오포럼 이사장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한·중 간 갈등을 ‘일시적 어려움’이라고 평가한 것은 향후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기본 입장이 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중국은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대만 문제 등에서 한국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상황이 확대되지 않도록 성의를 보여야 비로소 더 깊은 측면의 교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면서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강조한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으므로 어느 일방의 주의와 노력만으로 접합점을 찾을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수교 31년을 맞은 현대 한·중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북핵 문제 등 어려운 문제는 접어두고 경제 등 다른 분야를 우선 발전시킨 선이후난(先易後難)적이고 화이부동(和而不同)적인 기형 구조가 결국 사드(THAAD)라는 암초를 만나 돌파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생존의 기로에 있는 한국의 입장을 한·미관계의 부속물로 파악해 한·중 관계에서의 한국 역할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 상황에서도 대북 제재와 압박보다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평화’가 낫다는 중국의 주장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핵확산 방지에 책임이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당연히 직접적인 북한 설득은 물론 국제사회와 더불어 일단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인도하는 분명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중국은 여전히 사드 문제에 대해 양국문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 주도의 대중 반도체 규제나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한국의 언급을 미국의 중국 포위 정책 동참으로 간주한다. 주지하다시피 반도체 생태계는 원천기술과 장비 및 소재를 공급받지 못하면 제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시장이 없다고 한국의 최첨단 반도체 기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간과하면 모두에게 손해다.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 언급도 ‘하나의 중국’에 대한 부정이 아닌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국제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원론적 접근이다. 전형적인 불법적 현상 변경 시도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철저히 방치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 강조만으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양국이 처한 외교적 환경은 준엄하다. 만일 양국 갈등의 원인을 계속 한국의 책임으로만 전가하면 그렇지 않아도 미·중 사이에서 이른바 ‘타자(他者)의 함정’에 빠져있는 한국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어 불확실성만 증폭시키게 된다. 한국의 취약한 공급망을 자극하는 희귀광물 수출 통제나 안중근 의사 전시실 폐쇄와 중국 정부의 해외 단체여행 허용국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중 카페리 여객 운송이 3년 7개월여 만에 재개됐다는 소식이 동시에 들린다.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악화한 국민감정을 완화하겠다는 노력이 시급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세심한 접근이다. 더이상 한·중 관계가 소아병(小兒病)적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갈등 있는 대화’를 상정하고 상호 간 차이를 인정하는 용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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