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한·미·일 정상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다. 별장이 주는 이미지는 백악관보다 덜 격식적이고, 덜 공개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별장에서 역사의 큰 획을 긋는 ‘결의’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격식적인 백악관 정상회의보다 한층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남이 아닌가 한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3국정상 회의는 어느 때보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3국의 결속이 2018년부터 벌어지고 있는 미·중 기술패권경쟁에서 미국 측의 우위를 지키는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일 대(對) 중·러·북의 안보대립에서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디 캠프 데이비드의 정신은 ‘동서대립의 긴장완화’였으나 이번에는 기술, 경제, 군사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전제로 세계를 경영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크게 반영되고 일본과 한국이 뒤따르는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국 관계는 지난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전두환 대통령 때 이후 지금이 가장 친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40년 전 당시에는 막강한 미국을 방파제 삼아 나카소네 총리가 미일, 한일 관계의 가운데 서서 걸출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현재의 3국 정상들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관계가 어긋나기 쉽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약점도 있다.
문제는 ‘포스트 캠프 데이비드’다. 이 회의가 끝나자마자 우리 정부와 기업은 어떤 전략과 정책을 갖고 중국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난도 과제 풀이에 나서야 한다.
우선 미국과 유럽의 자세를 보자.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최근 디리스킹(위험회피)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디리스킹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능력을 제한하고, 혼란에 대비해 중국과의 공급망을 복선화하며, 중요 원자재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 등을 의미한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하는 디커플링(경제분리)에 비해 특정 리스크 감소를 목표로 하는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도 대 중국 관계에서 '디리스킹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정상들이 합의했다. 2018년 미·중 갈등 이후 미·중은 전체 무역에서 서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신규 직접투자도 감소해 사실상 경제관계가 점차 단절되고 있다. 디리스킹은 양국에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세상을 바꿀 핵심기술의 치열한 개발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미래 기반기술이 둘로 나뉘면 세계 관련 비즈니스 생태계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중국이 반도체 소재 갈륨 같은 중요 광물의 수출을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혼란이 반복되고, 서방이 취하는 대안은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다.
한편 유럽연합(EU)은 2019년 3월 대(對)중국 정책 문서 'EU-중국 전략 전망'을 발표했다. 이 문서에서는 중국에 대한 EU 측의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즉 EU에게 중국은 (1)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협력 파트너', (2) 이익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협상 파트너', (3) 기술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 (4) 서로 다른 통치모델을 추진하는 '체제적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EU가 중국을 대하는 방식을 단순히 '대립'이나 '협력'이라는 단선적인 방향성으로만 정리할 수 없다. EU는 중국을 격렬하게 대립하는 분야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쟁점에서는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EU는 어떤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거나 경쟁, 혹은 대립하고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문화-인적교류, 세관-항공 업무 등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기 어려운 실무적-기술적 분야에서는 EU는 중국과 협력하는 자기장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경쟁관계에 있는 분야로는 철강, 태양광 패널, 첨단기술 개발 등 중국의 과학기술력 발전에 따라 EU와 무역 마찰을 빚고 있는 분야를 들 수 있다.
또한 대립하는 분야는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의 투명성-공정성 등 주로 규범과 관련된 문제이다. 최근 EU가 대외정책에서 규범을 중시하는 태도를 더욱 명확히 하면서 규범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향후 EU는 유럽경제안보전략에 제시된 대중국 견제의 구체적 방안을 둘러싸고 일본, 미국 등 비슷한 우려를 가진 국가들과 협력을 모색할 것이다. 우리도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국과 어떻게 중요한 파트너로서 관계를 확보할 수 있는지 그 여건을 만들어 가는 일이 절실하다.
둘째는 변하고 있는 중국 사정이다. 각국이 중국을 대하는 방식이 일정치 않은 가운데 외국자본의 중국 투자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6월 대중국 직접투자는 확인 가능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이테크 분야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중국의 대외 개방에 대한 의구심이 그 배경이다. 외자 이탈로 인한 디커플링(경제 분리)이 진행되면 중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4~6월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공장 건설 등에 투자한 금액은 49억 달러(약 7조1000억원)였다.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은 87%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은 우방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지난 9일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대중국 투자 규제 강화를 발표했다. 합작투자를 통한 신규 투자도 대상이어서 투자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정책 이후 중국 경제는 활기를 잃었다. 성장을 견인해온 부동산 시장이 구조적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주택 등 민간 자본 형성은 성장하기 어렵다. 노동인구 감소도 성장을 저해한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등에서 자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필요한 장비와 부품의 해외 조달이 부진하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 속도가 떨어지면 중국 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성장 둔화는 세계 경제에도 부담이 된다.
셋째는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처리수 방류문제다. 일본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회의가 끝난 뒤 이달 말이나 내달 초에 해양방류를 실시할 것이다. 일 정부가 국내외에 어떤 설득력을 보여줄지가 우선 관심이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의 안전성 보고서를 인정하는 입장을 보여온 우리 정부는 야권과 환경운동세력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고, 중국은 대 일본 정부 비난을 국제여론으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결실과 고도의 구상력이 필요한 대 중국 전략들이 오염수 문제에 휘둘리지않게 하는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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