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K팝으로 봉합된 비정상 잼버리… 잘못한 사람은 없고 낯뜨거운 말잔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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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3-08-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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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파행으로 치닫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K-팝 콘서트라는 최후의 카드 덕분에 가까스로 봉합되면서 폐막했다. 대회는 준비 부실에 따른 난맥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한때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게다가 태풍 ‘카눈’ 때문에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야영지 철수 결정을 내림에 따라 새만금 잼버리는 갑작스럽게 지역관광과 K-팝 콘서트를 콘셉트로 잡게 돼 버렸다.

특히 서울에서 열린 K-팝 콘서트는 위기에 처한 이번 대회에 막판 구원 투수 역할을 했다. 새만금 대회가 세계적 망신거리가 된 상황에서 아예 서울로 옮겨 개최한 K-팝 콘서트는 세계 청소년들이 받은 상처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야영을 기본으로 하는 잼버리 대회의 정신을 생각할 때 느닷없이 관광과 K-팝 콘서트가 돼 버린 광경은 비정상적이었다. 그러나 당장 ‘나라 망신’ 소리가 나오고 해외 언론들까지 새만금 대회의 부실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대회에 참가했던 스카우트 대원 4만여 명이 한국에 대한 실망을 안고 떠나게 될 상황을 어떻게든 막고, 그래도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소방수였던 셈이다. K-팝 콘서트를 급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무리가 따르기도 했지만 그나마 대회가 유종의 미를 거둔 데는 참가 청소년들을 열광시킨 K-팝 역할이 지대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K-팝 효과 뒤에 숨어서 ‘이럴 것이면 무엇하러 새만금 대회에 돈과 시간과 인력을 쏟아부었던가’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애당초 세계 청소년 관광대회나 K-팝 페스티벌을 의도했던 것이 아닌 이상 새만금 야영지가 쓸모없는 대회장이 되었던 결과는 엄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세계적 행사를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감찰과 감사, 국회에서는 진상 파악,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까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상식의 잣대로 보았을 때는 큰 틀에서 판단은 가능하다. 대회 유치 이후 6년여라는 시간만 놓고 보았을 때 5년에 대한 책임은 문재인 정부, 그리고 1년여에 대한 책임은 윤석열 정부에 귀속된다고 판단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전북도의 책임은 6년 전체에 걸쳐 따르며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책임 또한 가벼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상한 말들이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하듯이 이어진다. 새만금 야영지의 기초시설들과 폭염 대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은 “오히려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마치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것 같은 말을 꺼낸 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대책을 다 세워놔서 차질 없이 준비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던 당사자다. 여성가족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정례브리핑에서 "김현숙 장관은 조직위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으나 잼버리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로서 책임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들이다.

그런가 하면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관영 전북도지사 말도 불편하게 들린다. 김 지사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개최지 도지사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북부터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도 지겠다”는 얘기였지만 “전북이 잼버리 대회를 이용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끌어왔다는 등 허위사실을 주장해 전북도민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말도 그 이상으로 크게 들렸다. 전북도가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새만금 개발 예산을 따냈다는 비판들을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하며 경고성 얘기를 꺼낸 것이다. 김 지사는 새만금 SOC 사업이 잼버리 유치 이전에 발표된 계획들이라는 얘기지만 잼버리 유치가 그 사업들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었음을 돌아보면 선뜻 수긍이 되지 않는 항변이다. 새만금 잼버리를 유치해 놓고도 6년 동안 기본시설조차 갖추지 못했던 전북도의 결정적 책임을 생각한다면 전북도지사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일 상황은 아닌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도 모호하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3일 본인 페이스북에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다"며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고 했다. "대회 유치 당시 대통령으로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지만 막상 국격을 잃고 긍지를 잃게 만든 과정과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오히려 현 정부에 책임을 묻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분위기다. "새만금을 세계에 홍보해 경제적 개발을 촉진함과 아울러 낙후된 지역경제를 성장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대회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던 전북도민들의 기대는 허사가 되고 불명예만 안게 됐다"는 문 전 대통령의 얘기는 자책의 의미보다는 현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민주당이 내놓는 말들은 의미가 더욱 분명하다. 잼버리 대회 파행을 중앙정부, 전국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민간이 수습한 것을 두고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정부가 친 사고를 우리 국민 혈세로 수습했다”고 비난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 시절 사용했던 특활비처럼 국가 예산도 그렇게 써도 되는 줄 아나 보다. 정부가 친 사고 뒷수습에 들어가고 있는 돈, 모두 우리 국민 혈세”라는 것이 민주당의 얘기였는데, 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잊은 모습이다. 대회를 유치한 전북도는 계속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맡아왔고 민주당 정부 5년은 대회 준비에 결정적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이 새만금에서 철수하여 숙소를 잡고 관광을 하고 K-팝 콘서트를 하느라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기왕에 새만금에 들어간 1000억원 넘는 돈이 쓸모없게 된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깝기만 하다. 그런 상황을 애당초 야기한 자신들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혈세’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잼버리 대회가 끝난 지 여러 날이 되었지만 자기 책임을 선뜻 인정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잼버리 파행 사태는 진영과 정파 간 정쟁 차춴을 넘어 대한민국의 문제로 다뤄야 할 일이다. 정치세력이든 지지자들이든 우리 쪽 책임에는 침묵하고 저쪽 책임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으로 갈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상대 탓은 큰 목소리로, 내 탓은 작은 목소리로 한다.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면 대회 준비는 왜 그 꼴이 되었을까.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지 않으니 강제적인 조사로 진상과 책임을 가리는 길밖에 없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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