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건국의 재조명) ③대한민국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3-08-17 11:2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1948년 8월15일 중앙청 앞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948년 8월15일 중앙청 앞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대한민국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좌파 진영 일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친일·분단 세력이 세운 반쪽짜리 국가라며 정통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올해 8월 15일로 대한민국 수립  75년을 맞지만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여기는 일부의 역사 인식은 여전하다. 그 인식은 정치·외교·안보·경제·교육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과 대립의 씨앗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이다.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 해 5월 10일 북한을 제외한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유엔 감시 아래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 당시 38도선 이북 지역인 북한은 소련의 거부로 유엔이 감시하는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고 여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제정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세웠다. 유엔은 이렇게 출범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언한 것이다. 


'친일파가 세운 남한 단독 정부'로 깎아내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유엔 결의문 내용을 자의석으로 해석한다. 이명박 정부 때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놓고 일부 국사학자들이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았다’는 구절 가운데 ‘한반도의 유일한’이라는 부분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감시 아래 선거가 실시된 지역은 38도선 이남뿐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 합법 정부가 아니라 38도선 이남인 남쪽 지역만을 대표하는 합법 정부라는 주장이다. 이들 주장대로 하면 38도선 이북의 북한 지역을 대표하는 합법 정부는 김일성이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도 남한과 대등한 합법 정부가 되는 것이다.

 

사실 북한 공산주의 세력은 남한에 앞서 1945~1947년에 소련 주도 아래 단독 정권 수립 준비를 단계적으로 해왔다. 1945년 10월 28일 북한 정권의 ‘태아’라고 할 수 있는 5도행정국을 창설했다. 1946년 2월 8일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실질적인 공산 단독정부를 출범시키고 정규군인 ‘인민군’을 창설했다. 소련은 1947년 말에는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까지 정해 줬고, 1948년 2월에는 김일성 정권 수립에 사용할 헌법안까지 작성했다. 마침내 1948년 9월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 헌법을 통과시켜 김일성 독재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다. 

 

그럼에도 좌파 진영 측 인사들은 남한이 대한민국이라는  단독 정부를 세우는 바람에 ‘통일민족국가’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으면 남북 통일 국가가 수립될 수 있었을 텐데 대한민국이 태어나는 바람에 남북이 분단됐다는 식이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보는 인식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4월 4·3 사건 72주년 추념식에서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했다. 그는 "교과서에 4·3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임을 명시하고, 진압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 수단이 동원됐음을 기술하고 있다"며 "뜻깊다"고도 했다.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해서 일으킨 무장 폭동을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다. 문 대통령이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고 한 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꿈꿨다는 말일 것이다. 4·3 사건에서 민간인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한 남로당 행위는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남로당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이승만 정권의 '국가 폭력'은  강조하면서 정작 남로당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았다. 

 

일부 좌파 인사들이 유엔 결의문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하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친일파가 ‘미국 점령군’의 지원 아래 대한민국을 세워 일제시대 이래 계속 지배체제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지주와 고위 관료 등 친일파가 주인인 나라라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을 반쪽짜리 분단 국가이자 친일파가 지배하는 국가로 보니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빼라는 사람들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며 "분열의 역사"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 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인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고향인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찾아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으냐"라면서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 대표의 말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그러나 그런 인식의 연장 내지 반영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우리 사회 여러 부문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남북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지우며 이승만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게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하기는커녕 분단의 원흉으로 몰아간다. 따지자면 김일성에게 분단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도 김일성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논란도 반(反)대한민국 역사 인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마련된 교과서 집필 기준에는 대한민국 체제를 ‘민주주의’로 기술했다. 이를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좌파 성향 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도 있고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말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중시한다. 사적 소유권이나 시장 경쟁 역시 자유주의 정신의 한 반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점과 함께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도 국민 자유와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반면에 사회민주주의는 사적 소유권과 자유 경쟁을 제한하는 사회주의 실현을 이상으로 하되 공산당식 혁명적 방법이 아니라 민주적 선거를 통해 추구한다는 게 핵심이다.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이 추구하는 이념이다. 인민민주주의는 북한이나 중국이 주장하는 체제로서, 노동자와 농민 등 소위 ‘무산 계급’의 독재를 말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헌법 전문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정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좌파 진영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뭐겠는가?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미국식 이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니 자유민주주의도 부정적으로 보면서 민주주의로 하자는 건 아닐까? 더욱이 북한은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재산 많은 일부 계층이 노동자와 농민 등 다수의 무산 계층을 착취하는 체제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도 포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 

 

반(反)대한민국 인식은 외교, 안보, 대북 관계에서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으로 통일이 무산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제라도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주장은 대북 정책에서 압박과 제재보다 대화와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한미동맹보다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임기 내내 지상 과제처럼 추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6·25 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인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를 끝내고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태어나길 정말 잘 한 나라'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유엔사 주요 간부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유엔사는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지금도 유엔사를 한반도 적화 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고 있다”며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는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회원국의 전력을 즉각적이며 자동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것이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뤄지면 북한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북한은 1980년 이후 ‘고려연방제’를 주장하면서 ‘선결 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공산주의 활동 보장 △미국·북한 평화협정 체결 협조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내정간섭 포기 등을 내걸었다. 대북 압박과 대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보는 눈이 좌파와 우파 진영 간에 이렇게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한·미·일 공조 강화냐 북·중·러 관계 개선이냐를 놓고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 안보 문제를 둘러싼 이런 논란들도 그 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이었고 축복에 가까웠는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이 보여준다.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올랐고, k-팝은 전 세계 젊은이를 사로잡는다. 신생 독립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기적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모든 시민이 맘껏 자유를 누린다. 이 모든 것은 ‘자유’와 ‘민주’를 동시에 추구한 자유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택했더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아니라 태어나길 정말로 잘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