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권의 가입자 유치 경쟁은 다른 업종에 비해 더 치열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해당 시장이 포화 상태고 보험사들의 성장동력이 크게 둔화됐다는 시각 때문이다. 이에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판매 인력을 끌어모아 영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당 전략이 자금력 있는 대형사로 '설계사 쏠림 현상'으로 이어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설계사들의 잦은 이동을 통한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이어지다 보니 상품의 기본 내용이나 투자 위험성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보험사 설립에 따른 업계 분산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아 보험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금력 있는 대형사로 쏠린다
보험업법상 보험대리점은 보험사를 위해 보험계약 체결을 대리하는 자로, 법인보험대리점은 상법상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 선택권 제고를 위해 여러 보험사의 다양한 상품을 비교·설명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최적의 상품을 권유하도록 한다는 게 설립 취지다. 예컨대 가전제품을 사고 싶은 사람이 삼성전자, LG전자 매자을 각각 방문해 가격 비교를 할 필요 없이 하이마트 등 복합가전 전시몰에서 여러 제조사 제품들을 한번에 볼 수 있게끔 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보험 백화점’으로 생각하면 쉽다.
문제는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인 가운데 GA시장 참여자 증가로 판매 경쟁이 심화해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연구원은 GA 중 적자 기업 비중이 2018년 17.6%에서 2022년 29.3%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형사들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수합병 등 몸집을 불리고 있는 반면 일부 GA들은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적자 기업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한화생명은 GA 2개사(한화생명금융서비스, 한화라이프랩)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올 초 또 다른 GA사인 피플라이프를 인수해 설계사 조직 규모를 업계 최대인 2만5000여 명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당국이 최근 설계사가 보험계약 체결 시 계약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특별이익(사은품) 제공 한도를 기존 3만원 이하에서 20만원 이하로 관련 금액을 상향 조정하면서 대형사 대면 영업 쏠림 현상을 거들고 있다. 상위 대형사들과 GA들이 20만원을 상회하는 사전관리형 사은품을 대량으로 싸게 구입해 영업활동을 하면 해당 사은품을 내민 업체에 가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소비자 피해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매 인력 증원을 위한 보험업체 간 과도한 비용지출 경쟁과 설계사의 잦은 이동은 불완전 판매나 승환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형 GA의 설계사 정착률은 2022년 53.9%로 2018년(79.7%) 대비 25.8%포인트 감소했다. 설계사 2명 중 1명꼴로 1년 안에 이탈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승환계약은 설계사들이 타 회사로 이동할 때 본인이 기존에 성사시킨 계약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경향이 커 불완전 판매의 주 요인이 되고 있다. 가입자들에게 이전 회사 상품 해지를 유도하고 이후 이동한 회사에 유리한 상품으로 신계약 변경을 하는 방식이다.
보험권 일각에선 새로운 보상체계 마련 등을 통해 설계사 조직원의 심리적 안정감과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새로운 인센티브 구조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들로서는 양극화가 고착화돼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업계는 아직 설계사를 통한 모집 의존도가 높다 보니 설계사를 많이 보유한 업체를 당해내기 사실상 어렵다"며 "보상 체계도 원수사 등을 보유한 대형사들의 인센티브가 워낙 높아 중소형사들이 설계사를 빼오거나,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보험사로 양극화 타개 나섰지만···무용론 지속
당국과 보험권은 양극화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GA·설계사 등 대면 채널 비중을 분산하고자 설계사 조직이 없는 디지털 보험사 설립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원수사를 보유한 국내 디지털 보험사들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며 양극화 현상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험권은 디지털 상품은 중저가 위주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장기간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디지털 상품은 대면 채널이 없어 설계사 수수료 등 사업비 부담이 없다. 따라서 가격 경쟁력이 최대 무기로 여겨지며 소비자들 역시 이 같은 이유로 디지털 상품을 택하고 있다. 다만 한 번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존 보험사 대비 손해율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상품 다양화로 손해율을 개선하는 원론적 방법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실제 캐롯손해보험과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은 지난해 9월 각각 문효일 대표와 강태윤 대표 등 새 수장을 선임했음에도 큰 반등을 이어가지 못했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795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 1분기 100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은 2013년 출범 이후 계속 순손실만 기록 중이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총 14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으며 지난해 141억원, 올해 1분기 61억원 등 손손실을 기록했다. 디지털 손보사를 표방하고 있는 금융지주 계열 하나손해보험과 신한EZ손해보험 역시 올해 1분기 각각 83억원, 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아울러 카카오 자체 브랜드와 연계해 '메기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던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은행), 카카오페이증권(증권사), 카카오페이(간편결제) 등 여러 금융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카톡, 카카오T 등 각종 생활종합플랫폼을 보유해 보험상품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다양하다. 그럼에도 지난해 261억원, 지난 1분기 78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카카오페이손보가 9개월여 만에 최세훈 전 대표를 조기 퇴진시키고 장영근 전 볼트테크코리아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는 한 디지털 보험사들의 불필요한 '버티기식' 혹은 '제살 갉아먹기식' 경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보험사 관계자는 "일부 디지털 보험사들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적을 개선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중저가 위주 상품 포트폴리오와 비대면 위주 영업으로는 성장세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보험사들도 자사 온라인 다이렉트 채널을 통해 중저가 상품을 쏟아내고 있어 디지털 보험사 성장 우려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소규모라도 대면 채널 구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고 이렇게 되면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 오히려 보험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딜레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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