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언론사 논조 및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지금은 당연한데 그때는 어림없었던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학예연구사’라는 이름의 미술관 전문직을 선발하면서부터다. 그후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전후로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일반화되었다. 특히 TV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출연하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미술관이나 미술동네에서 일하는 전문직을 칭하는 용어 정도로 이해했다. 이후 일부 화랑에서 일하는 이들까지 큐레이터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지만 이런 오해는 도서관의 사서와 독서실의 일명 ‘기도’라 불렀던 ‘지킴이’와 비교되면서 구분이 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도처에서 큐레이터란 용어가 남용 또는 오용되면서 본질이 왜곡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큐레이터가 큐레이터로 기능하는 데는 국립현대미술관에 큐레이터 즉 학예연구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년이 지난 2005년부터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생긴 후발부서 학예연구실 주요 업무는 ‘작품관리’와 ‘조사’ ‘연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큐레이터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학예연구직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가장 중요한 작품 수집, 작품관리 및 개발 그리고 소장품에 대한 조사, 연구 업무, 전시를 기획하고, 소장품을 해석하는 역할 중 작품관리와 조사연구 외에는 당시 문화공보부 이후 문화부에 소속된 미술과는 관련 없는 일반행정직 공무원들로 구성된 ‘전시과’가 업무를 담당했다. 즉 전시의 모든 것을 일반행정직 4급 서기관이 총괄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작품 수집과 개발, 전시기획등 등 미술관의 전문분야를 큐레이터가 아닌 일반행정직 공무원 또는 별정직, 기능직들이 수행하는 기형적인 상황이었다.
이후 정상적인 미술관의 큐레이터 십(curator ship)의 구현을 위해 정부 즉 문화부의 조직개편, 직제조정이 따라야했지만 공무원의 직제와 인원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와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원)의 이해 부족과 문화부의 조직과 권한 축소를 염려하는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직제조정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임영방 관장이 고육책으로 꺼낸 것이 ‘근무지 지정’과 ‘파견’이라는 편법이었다. 근무지 지정을 통해 당시 전시과와 교육과 움직이는 미술관 운영을 위해 섭외교육과에 배치되었던 학예연구직을 학예연구실로 근무지 지정 또는 파견을 통해 소장품 개발과 수집추천업무 그리고 전시기획업무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직제상 전시는 여전히 전시과의 업무로 모든 전시 관련 예산과 작품수집예산 등은 전시과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따라서 작품 수집과 전시기획 등 미술관의 주요업무는 실제로 기획과 실행은 학예연구실이 하고 전시과는 이를 관리감독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이원화 된 구조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이후 수년을 학예연구실과 전시과 간의 설전과 암투를 벌이면서 이런 파행적인 이중구조로 20여 년을 끌어왔다.
외부에서는 왜 전시, 작품 수집이 여러모로 부족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실은 내부적으로 이런 파행과 편법으로 끌어오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작품수집에 법적으로 실제적 권한과 예산 집행권을 가진 전시과 일반행정직이 특정 작가의 작품 수집을 위해 추천권을 가진 학예연구사들에게 압력이 가해지는 일도 빈번했다. 또 전시과와 학예연구실의 사이가 좀 벌어지면, 직제에 없는 근무지 지정과 파견 그리고 작품수집과 전시권을 전시과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종종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파행은 2000년이 들어서면서 직제는 마련되지 못했지만, 학예연구실이 작품 수집과 전시 기획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고 2005년 11월에 들어 최종적으로 직제가 개정되면서 학예연구실이 미술관의 전문적이고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되는데 2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전시과는 조직보존을 위해 미술관 정책과로 과명을 변경했다. 이후 지금까지 정책과는 이런저런 명칭의 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명맥을 잇고 있다.
◆여전한 위기의 큐레이터 십
지난 20여 년간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입장과 처지가 이러했으니 공 사립미술관 큐레이터의 처지와 업무환경은 어찌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런 미개한(?) 상황이 간혹 연출되면서 현직 큐레이터나 큐레이터를 희망하는 이들을 좌절하게 한다. 그것도 권력이라 할 예산과 인원을 빼앗긴 공무원들이 아닌 미술계 인사들의 말과 행동에서 큐레이터의 고유업무가 침해당하고 때로는 큐레이터 십이 훼손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지난 20여 년간 큐레이터 십의 사회적 행정적 법률적 권리확보를 위해 분투해 온 이들에게는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와 다름없는 일이다.
사실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는 소장품을 개발하고 작품의 기증 또는 구입과 이를 관리하는 것 외에도 전시조직을 해야한다. 이를 ‘전시 큐레이터’(Exhibitions curator)라 한다. 전시 큐레이터는 전시회를 구상하고 조직하는 일을 한다. 따라서 특정 전시의 ‘큐레이터’라는 말은 전시를 위해 작품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말한다. 큐레이터는 맥락 또는 전시 스토리 라인에 따라 작품을 선택하는 외에도 전시장의 작품 명제표, 카탈로그 에세이 및 전시회를 지원하는 기타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을 담당한다. 즉 전시큐레이터는 전시를 위한 작품 선택, 해당 작품의 해석 및 지원 콘텐츠 개발에 관한 결정 또 일반적으로 자신이 관리하는 컬렉션의 관리 및 해석에 관한 결정을 내릴 권한도 아울러 갖는다. 또 전시회의 작품설치를 감독하고 기관의 사명과 목표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전시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큐레이터들은 큐레이터의 작업을 정의하는 기본 원칙, 핵심 신념 및 중요한 책임을 설명하고 윤리적 행동을 규정한 ‘큐레이터를 위한 윤리 강령’(A Code of Ethics for Curators)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진다.
사실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무작위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전시큐레이터는 미술관과 미술관 조직 전체를 대신해서 전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전시 주제 선택부터 전시하고자 하는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구현하는 일에 이르는 전체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 그후 전시 실현을 위한 운송과 그 관리를 해야하며 전시는 주제, 작품과 주 대상 관객을 고려해 전시로 이끌어야 한다. 그 이후 전시를 위해 미술관 내외의 모든 관련된 사람, 작품, 전시디자인, 기타 운송과 보험, 홍보와 교육 등등의 모든 요소를 감독할 책임과 의무를 진다. 이렇게 전시큐레이터의 임무와 책임은 전시회 개막부터 폐막까지다. 특히 전시 후반부의 작업은 해당 전시가 제공하는 문화적 접근성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는 큐레이터를 기능과 직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능과 직업의 차이는 결국 전시 큐레이터가 미술관 시스템 내에서 보여 주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개념에 관계없이 세심한 주의와 성찰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기능인이자 직업인이 다. 왜냐하면 전시란 문화에 접근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미술사를 생산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큐레이터의 관계 또는 역할
사실 평소에도 작가와 큐레이터의 관계는 복잡하고 다면적이지만 특정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고 실천할 때 큐레이터는 작품을 선택하고 해석하고, 전시회를 조직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장거리 연애처럼 정신적 교감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보살피는 인내가 필요하다. 작가, 큐레이터, 관객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며 큐레이터는 작품을 언제 어떻게 보여 줄지를 결정할 때 작가의 작품을 재료로 사용하는 또 다른 작가, 즉 예술가가 되는 셈이다.
사실 큐레이터의 미술관 전시는 '미술 감상'의 모델을 보여 줄 것인지 아니면 '문화적 통찰력'을 보여 줄 것인가에 따라 또 작가와 관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때에 따라서는 작가가 큐레이터의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대개 미술관 전시에서 작가와 큐레이터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근로자와 경영진의 관계와 다소 유사하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작가는 큐레이터인 ‘감독자’ 또는 ‘사용자’가 자신의 작품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통제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무지해 작가를 잘못 관리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하기도 있다. 이렇게 작가와 큐레이터의 관계는 복잡하고 다면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로 치면 큐레이터는 감독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를 인정해야만 제대로 된 전시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거듭 말하지만, 성공적인 전시를 위해서 작가와 큐레이터의 상호 이해와 존경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일방적인 주장이나 요구로 전시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 작가와 큐레이터 그리고 미술관까지 모두 손해고 가장 큰 피해자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좋은, 성공적인 전시를 위해 작가는 일차생산자로서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말하면 작곡자는 주선율인 멜로디를 만들고, 큐레이터는 멜로디를 뒷받침해 주는 반주, 부선율, 코러스를 만드는 편곡자인 셈이다. 이런 상황을 서로 이해한다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큐레이터는 현장의 연출자이자 미술사학자로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때로는 현장 비평가로서 일하기도 한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이를 맥락화해서 전시로 내놓는 또 다른 작가, 즉 창작자이다. 특히 작가가 자기의 작품과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큐레이터의 ‘창작의 자유’와 함께 미술사가로서 ‘학문의 자유’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작가가 자신의 특정 작품을 전시에 넣을 것을 주장하거나 큐레이터에게 강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창작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다.
사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작가들이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직접 골라 전시장에 용달차로 실어 오던 시절이 있었다. 전문성 없는 일반행정직들이 전시업무를 실행하던 때 일이다. 환갑이 넘은 노작가들이 용달차 조수석에 앉아 작품을 운반하던 것을 큐레이터가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출품작을 선정하고, 트럭을 보내 작품을 운송해 오기 시작한 것이 1998년 일이다. 작은 큐레이터십의 실천이었던 셈이다. 이제 21세기 ‘30-50 클럽’의 7개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 시절 국립미술관을 대관해 작가가 자신의 전시를 디스플레이 하던 전근대적 1960~80년대 식 행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특히 전시를 위한 작품 선정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소장작품의 보존과 관리인 때문에 전시를 위해 관내로 반입되는 작품이 오염되어 있을 경우 질소산화물, 유황산화물, 알칼리성, 수지종류의 산성 오염인자가 유입될 수 있고, 특히 미생물로 인한 오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훈증 등의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 선정은 빠를수록 좋다.
미술계의 어른을 자처하는 작가가 미술관의 손자나 자식뻘 되는 큐레이터에게 나이로, 권위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또 설득과 협의를 통해 전시를 진행하기보다는 언론에 알려 이를 기사화하거나, 상급 기관에 이야기해 외부의 힘을 빌려 큐레이터를 압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큐레이터가 가장 고민스러울 때는 자신의 작가가 10년 안팎으로 회고전 성격의 전시를 했던 경우다. 큐레이터는 이전 전시와는 차별화된 다른 관점과 해석을 토대로 새로운 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간의 해석과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전시를 시도할 경우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10년 전 작가의 전시와 똑같은 전시라면 국민의 세금을 들여 굳이 왜 했느냐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전혀 새롭게 독해했다면 너무 나갔다는 평을 들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시는 보통 2~3년 전에 결정한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사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가 1년여 전에 결정되어 시간이 부족할 경우 제아무리 뛰어난 큐레이터라 하더라도 급조된(?) 듯한 느낌의 전시밖에는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간 일하면서 만났던 큐레이터에게 전시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위임하고 일임하던 멋진 작가들이 떠오른다. 경험에 의하면 대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없는 작가들이 자기의 손으로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서전을 쓰듯 전시에 시시콜콜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마치 탐관오리들이 “수탈로 얼룩진 제 손으로 재임 중에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던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국제적인 작가, 세계적인 한국미술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작가가 모든 것을, 특히 자신의 전시를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나 비평과 비판을 구별 못 하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현대미술을 한다는 작가가 표리부동한 행동을 할 때는 더더욱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이 든다.
큐레이터는 아직도 여전히 행정부는 물론 미술 동네에서 찬밥 신세다. 존중받기는커녕 미술관의 전문학예직과 미술학예직이란 괴이한 직제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큐레이터들의 처지가 딱하다. 그런데 작가로부터 수난까지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말에 놀라서 지난 2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까워 몇 마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이제라도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맡겨야 할 텐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숨이 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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