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최재영 처장 "진료·연구 병행하는 의사과학자, 양성·지원 체계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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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입력 2023-08-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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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 인터뷰

  • 의사과학자가 발굴한 지식재산,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기업이 사업화

  • 의대 증원, 의사과학자 양성 해법 아냐…MIT-하버드 연계 프로그램 모범 사례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의사과학자 양성이 화두다.

의대 전공자가 18년째 정원이 동결된 가운데 일부만이 진로로 선택하는 의사과학자 수요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국내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의 진로를 선택하는 비율은 1% 미만이다. 졸업생의 30명 정도만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셈이다. 미국에서 매년 150명 이상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되는 것을 감안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가 글로벌 연 매출 1조원의 ‘블록버스터’ 국산신약 개발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표방하면서 의사과학자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지만 인재 육성의 길은 멀기만 하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주무부처에 “의사과학자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의사과학자는 진료하는 의사가 아닌 연구하는 의사다. 해외에서는 진료하는 의사와 연구하는 의사의 경계가 명확하지만 국내에서는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과학자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국내에서 의사과학자는 '진료하며 연구하는 의사'로 정의되고 있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대학원에서 의학 연구를 전공한 의사과학자는 풍부한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협업하는 신약 개발과 의료기기 개발 필수 핵심 인력이다.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을 만나 의사과학자의 역할과 육성을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최 처장은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로 2020년 의과학연구처장에 취임했다. 

최 처장은 의사과학자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기초과학 교육과 의학 교육을 각기 다른 대학에서 배우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대학 간 연계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의사과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들의 연구 성과를 기업에 소개하는 등의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의사과학자란 직업은 무엇이며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의 역할은. 

의사과학자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기초과학 연구까지 병행하는 의사를 말한다.
임상 현장에서 환자 치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한 연구를 추진하기 때문에 의과학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의과학연구처는 연세대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소속 교수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 연구비를 집행하고 결산하는 기본적인 회계 업무뿐만 아니라, 국가나 민간 연구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주할 수 있도록 정보도 제공한다. 연구 결과물인 다양한 지식재산을 사업화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의사 부족’ 문제가 화두다. 의대 증원도 검토되고 있는데, 의대 증원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 의대에서 의사과학자 배출이 늘어나야 한다. 의사과학자 배출을 전제로 한 증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늘어난 정원과 비례해 의사과학자가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로 선택 과정에서 의사과학자를 희망하는 의사가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의사과학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의사과학자가 된 후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는 의대생을 의사과학자로 양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족하다. 카이스트, 서울대, 연세대 등의 몇몇 대학이 수련을 마친 의사들을 대상으로 기초과학 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을 운영한다. 의사들이 임상 경험을 쌓으면서 기초과학을 배울 수 있도록,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는 것이 먼저다. 의대 증원만 하면 의사과학자도 많이 양성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는 어설픈 논리다.

-의사과학자 양성과 관련해 해외에서 벤치마킹할 우수 사례 있다면 소개해달라. 

미국 ‘MIT-하버드 프로그램’(MIT-Harvard program)이 가장 모범적이다. 기초과학은 MIT에서 배우고, 임상 수련은 하버드 부속병원에서 실시하는 방식이다. MIT 재학생이 하버드에서 의학교육을 받고, 다시 MIT로 돌아가 기초과학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각 대학이 저마다 가장 잘하는 분야의 교육을 맡아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있다.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이나 포항공대에 의대를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사과학자 양성과 연구 활성화를 위한 제안이 있다면.  

의사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기초과학 연구도 함께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충족 수요를 간파하고,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KAIST나 포함공대에 의과대학을 새롭게 만들면, 기초과학 교육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가 없는 신설 기관에서 임상 경험을 충분히 쌓기는 어렵다.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 환자들은 몇몇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MIT-하버드 프로그램처럼 각 기관이 특화된 역할을 맡아 협업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예를 들면 KAIST에서 기초과학 교육을 받은 학생이 같은 대전 지역을 오랫동안 지켜온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쌓는 연계 교육 과정을 구상할 수 있다.
 
캡션 수정 부탁드립니다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의과학연구처장 인터뷰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재영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 인터뷰[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난 2020년부터 의과학연구처를 이끌고 있다. 취임 당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계획을 달성했는지.

2020년 당시 ‘교수는 연구만! 사업화는 의료원에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취임했다. 의과학연구처가 단지 교수들의 연구비 관리를 돕는 단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업화해 환자 치료에 적용되도록 하는 경로가 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기획전문가를 고용해 연구계획서 자료 조사, 발표자료 작성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지원해 왔다. 또 ‘기술이전센터’(TLO)를 만들어 특허전문가, 투자전문가들과 지식재산권의 사업화를 체계적으로 돕고 있다.

-국내 의사과학자들과 기업이 협업을 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들었다. 의사과학자와 기업의 협업이 필요한 이유와 이를 어렵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의 핵심은 개방형 혁신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의사과학자는 지식재산 발굴, 기업은 사업에 각각 전문성을 갖고 있다. 국내외 대형 제약사들이 의사과학자들의 논문과 특허를 둘러보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연구에 투자해 상업화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가령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접종이 이뤄진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주’도 터키(튀르키예) 태생의 독일 의사과학자 ‘우구어 자힌’이 창업한 스타트업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의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탄생했다. 이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사과학자와 기업 사이에 충분한 연결 고리가 필요한데, 국내에는 아직 두 주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바이오 회사인 ‘연세대학교 바이오헬스기술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어떤 의도로 시작했으며, 성과가 나오고 있는지. 

기술지주회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은 많다. 하지만 인문계, 이공계, 보건의료계열까지 모든 단과대의 지식재산을 한 회사가 관리하기 때문에 전문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세대 바이오헬스기술지주회사는 바이오 분야의 기술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다른 대학의 기술지주회사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현재 30억원의 투자자금을 확보했고, 5개의 손자회사가 설립됐다. 손자회사 중 디지털치료제 인허가 컨설팅과 임상시험 디자인을 서비스하는 ‘에버트라이’는 작년 한 해 2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향후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의사과학자들의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더 많은 기술을 사업화하는 성과를 낼 것이다. 최근 5년간 의과학연구처에서 연세대 소속 교수들의 신약 분야 특허를 약 400개 분석했는데, 그중 10개 특허에서 사업화 가능성을 발견했다. 5개 특허는 실제로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바이오헬스기술지주회사의 손자회사도 연 5곳 내외로 추가로 설립하고, 향후 상장을 목표로 사업을 키울 계획이다. 국내 대학병원은 환자 진료 수익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으며, 기술 수익은 전체 매출의 0.2% 내외 수준이다.
반면 하버드와 엠디앤더슨(MD Anderson) 등 미국의 대학병원들은 기술 수익이 전체 매출의 30%에 이른다. 대학병원이 기술 수익만으로도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더 많은 의사과학자의 배출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환자를 치료할 새로운 기술 연구도 활발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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