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전속계약 해지 관련 소송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예인과 소속사 간 전속계약 분쟁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속사의 정산의무 등을 담고 있는 표준전속계약서의 허술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권고하는 표준전속계약서는 연예인들이 정산의무 위반 등을 내세우면 계약 해지를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분쟁 예방을 위해 사전에 세세한 사항까지 모두 계약서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박범석 수석부장판사)는 최근 피프티 피프티가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계약 해지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고 제출한 자료만으로 신뢰 관계가 파탄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프티 피프티가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계약 해지 사유로 내세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피프티 피프티 사건처럼 연예인이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 관련 소송을 내는 것은 흔하다. 전속계약 해지 소송에서 주로 쟁점이 되는 부분은 정산의무 및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 여부다. 원고인 연예인들은 소송 시 "소속사가 표준전속계약서에 따른 정산을 해주지 않고 정산자료 역시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며 계약상 의무위반 및 신뢰관계 상실을 이유로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표준전속계약서 '정산의무' 악용 계약해지 사례 증가
그런데 대부분의 전속계약 해지 소송에서 연예인이 정산의무 위반 등을 들고 나오면 법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연예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표준전속계약서에는 정산의무 시기와 방법 등을 명확하게 안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서 권고하는 연예기획사 표준전속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9년 만든 약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 차례 용어 등을 개선했으나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당시 표준전속계약서는 연예인이 회사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보니 기획사에게 다양한 의무들을 부과하고 있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 관계자는 "표준전속계약서에는 의무 이행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이 의무들을 악용해 전속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최근 많아졌다"고 우려했다.
가령 계약서에 '소속사에게 정산의무가 있다'고만 명시할 뿐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등을 언급하지 않을 경우 순이익이 발생한 뒤부터 정산을 해주는 것도 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 또 '정산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만 기재할 경우 소속사의 회계 자료들 중 하나만 누락해도 의무 위반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조계 "의무 구체적 적시해야"
법률 전문가들은 계약서에 불분명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용어와 문구를 쓰면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연예계가 표준계약서를 그대로 가져다 쓸 게 아니라, 계약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각 의무들을 세세하게 규정해야 반복되는 전속계약 분쟁을 막을 수 있다. 정산의무에 대해 △순이익이 발생한 이후부터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것인지 △매달 의무를 이행할 것인지, 분기마다 이행할 것인지 △정산의무 이행 시 제공해야 하는 것의 범위 △정산 시 제공하는 회사 회계 자료 범위 등을 계약서에 세세하게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이용해 yh&co 대표변호사는 "표준전속계약서는 개별 소속사와 연예인의 사정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할 경우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연예계가 아직까지 계약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법적 분쟁이 자꾸 생긴다. 전속계약 전에 법률 자문을 충분히 받고 구체적 내용을 담은 계약서를 작성해야 리스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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