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과 공모해 일명 '사무장 약국'을 개설하고, 조 회장이 억대 요양급여를 부정 수령하도록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진그룹 계열사 대표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안승훈 최문수 부장판사)는 3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한진그룹의 부동산 등을 관리하는 비상장 계열사 정석기업 대표 원모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원씨는 조 회장이 2010년 10월∼2014년 12월 '사무장 약국'을 운영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 등을 부정하게 타내는 데 도움을 준 혐의 등으로 2018년 기소됐다. 사무장 약국은 개설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약사 명의를 빌려 약국을 개설하고 사무장으로 이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1심은 원씨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조 전 회장의 모친 고(故) 김정일 여사 등 3명을 정석기업 임직원으로 올려 9년 동안 20억여원의 '가공급여'를 제공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사무장 약국과 관련해 수익 귀속에 있어 조 회장의 주도적 관여만 인정될 뿐,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원씨에게도 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수익 귀속에 있어 조 회장의 주도적 관여만 확인될 뿐 일반 사무장 약국과 달리 의약품 오남용이나 판매 질서가 훼손되는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실체는 독점 약국을 운영하는 대가로 수익금 중 70∼80%를 현금으로 받아 조 회장의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원씨는 조 회장 자녀인 현아·원태·현민씨가 보유했던 정석기업 주식을 비싸게 사들이도록 해 회사에 41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이 원씨가 조 회장과 공모해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 면세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부당하게 중개 수수료를 챙긴 혐의에 대해서도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자사주 평가액이 취득가액보다 낮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원씨가 조 회장과 공모해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 면세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부당하게 중개 수수료를 챙긴 혐의 등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비록 범죄의 증명이 부족해 일부 무죄를 선고했지만 피고인들은 행위가 아주 합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라며 "사실과 달리 진술한 내용을 읽어보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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